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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병역 기피 / 김종철

등록 2007-05-15 18:13

김종철 논설위원
김종철 논설위원
유레카
로마제국 쇠퇴기에 젊은이들 사이에 병역 기피 풍조가 퍼졌다. 전투로 날새는 군대 가기를 두려워한 이탈리아와 각 속주의 청년들은 오른쪽 엄지를 잘랐다. 엄지가 없으면 칼 등 무기를 잡기가 힘들어 군에 가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이를 눈치 챈 당국은 엄지가 없는 이들도 입대시키는 법률을 만들어 이런 풍조 확산을 막았다. 엄지 없는 사람이 군에 가는 것을 이르는 라틴어 ‘무르쿠스’(Murcus)가 여기에서 유래했다.

유교가 사회의 지도원리가 된 이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지도층의 병역 면제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조선시대 국가 교육기관인 향교에 등록한 유생은 누구나 군역에서 제외됐다. 임진왜란 이후인 인조 때 전국의 향교생 수가 무려 4만명에 이르렀다. 이에 조정에서는 일정한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향교생에게는 군역을 지우는 ‘낙강충군법’(講充軍法)을 만들었지만, 양반들의 반발로 시행 6개월 만에 폐지하고 말았다. “민심은 잃어도 좋으나 선비들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된다”(民心可失 士心不可失)는 이유를 들었다.

군역 의무는 돈 없고 가난한 백성들 몫이었다. 갓난아이에게도 군포를 매기는 황구첨정, 죽은 사람에게도 징수하는 백골징포 등의 용어가 나왔다. “배냇물도 마르지 않은 아이”에게 나온 군역을 감당못해 자신의 남근을 잘라 항의한 백성의 얘기를 시로 읊은 다산 정약용의 ‘애절양’(哀絶陽)은 이런 실태를 잘 보여준다.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삼정 개혁의 하나로 호포법을 실시하고서야 양반의 군역 특혜가 사라졌다. 조선이 이미 멸망의 길에 들어선 뒤였다.

병역 특례업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일부는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돈을 주고 특례업체에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는 장관급 인사의 아들 등 지도층 자제도 있다고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외치는 것이 아직도 시기상조인가?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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