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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사교육에 대한 몇 가지 고정관념 / 이영미

등록 2007-05-21 18:00

이영미/대중예술 평론가
이영미/대중예술 평론가
야!한국사회
참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생각도 늘 흘러가 보았던 익숙한 길로만 가려고 한다. 사교육의 폐해 때문에 내신 위주로 전형을 바꾼다는 최근 2008학년도 특목고 전형요강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우리는 늘 사교육 문제를 입시 방식의 문제로 직결시키는 사고가 습관화되어 있다. 그런데 도대체 이 방식으로 사교육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내신 위주로 선발하고 학교에서 배운 범위 안에서 시험문제를 내면 된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내신을 높이기 위한 사교육과, 뻔한 시험문제라도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하게 잘 푸는 기술을 익히기 위한 사교육이 성업 중이다. 이미 학원들이 각 학교의 중간·기말고사 시험문제의 경향을 분석하여 그에 맞는 성적 향상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교육이 효율적이지 못해서 사교육이 판을 치는 것이라고, 평준화를 없애고 공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면 사교육의 폐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습관도 아주 강고하다. 그러나 이 역시 ‘천만의 말씀’이다. 사교육의 존재가 전형 방법이나 평준화 정책과 무관하다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대학 이후의 사교육의 존재다.

더는 입시도 없고, 대학이 평준화된 것도 아닌데, 엄청난 수의 대학생과 대졸자들은 모두 사교육에 목을 매고 있다.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여러 종류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그리고 사법시험·행정고시를 비롯한 다양한 공무원 시험을 위해, 교사·기자·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맞춤식 학원을 선택하여 한 달에 적게는 수십만 원, 많게는 수백만 원의 사교육비를 쓰고 있다. 심지어 사법연수원생까지도 사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연수원 성적이 좋아야만 처음부터 변호사로 밀려 버리지 않고 ‘공직’인 판검사 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유아 시절 방문교사를 통한 한글교육으로 사교육을 시작한 뒤 무려 30년이 넘도록(이는 일생의 거의 절반이다) 사교육 속에서 살다가 중·장년을 맞는 것이다. 이는 공교육의 문제나 입시의 문제가 아니다. 사교육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획일적 서열화의 살벌한 질서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남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직장에, 안정된 정규직으로 취업하기 위해, 그럼으로써 남들보다 좀더 좋은 지역의 좀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갖기 위해 사교육을 받는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죽을 것처럼 불안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더욱 무서운 생각의 습관은, 사교육의 문제점을 오로지 교육 기회의 불평등의 문제로만 보는 것이다. 그러니 돈 들여서라도 좋은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는 반론이 늘 제기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사교육의 문제가 그것뿐일까?

전형의 경향에 맞추어 시험 보는 훈련을 하는 것은 진정한 실력 향상의 길이 아니다. 시험 잘 보는 훈련으로는 결코 창의력이나 사고력을 향상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무살이 되도록 시험만 보면서 성장하여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을 보면서 늘 드는 생각이다. 도대체 생각을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문제를 어떻게 설정하며 해결해야 하는지 모르는 학생들은 다시 대학에서도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또다른 사교육을 찾게 된다. 입학시험을 통과했음에도 스스로 공부해본 적이 없으니 대학 수업을 ‘수학’할 ‘능력’이 제대로 생겼을 리가 없다. 이런 학생들은, 벌이가 좋은 전공을 선택하기 위해 대학원생들에게 과외를 받아 학점을 올린단다.

입시요강만 고치는 방식으로는 아이들을 ‘창의적 인간’이 아닌 ‘시험 보는 기계’로 만드는 사교육을 결코 멈출 수 없다.


이영미/대중예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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