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논설위원
유레카
“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예전에 사랑했다는 게 무슨 소용인가요? 이미 지나간 사랑은 기억해선 안 되겠지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베인테 아뇨스’(20년)란 노래를 들어보면, 이루지 못한 옛사랑을 아무렇지 않게 떠올릴 수 있게 되는데는 20년 세월로도 모자라는 모양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에서 한 아이가 성인으로 인정받는 데는 20년이면 족하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사회에도 20년마다 한번씩 혁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현재의 사회 구성원들이 미래 세대에게 사상이나 법률, 계약의 구속을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새로운 세대는 자신들이 살 세상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연환경에 간혹 폭풍이 필요하듯 정치환경에도 자극이 필요하다며, 오래토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나라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헌법과 법률은 20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시효가 소멸돼야 한다”는 그의 말은 과격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왜 20년일까? 그가 살던 시대에는 스무살을 넘긴 국민은 18년8개월이 지나면 절반 넘게 죽었다고 한다. 이에 근거를 두고, 세대가 바뀌는 것을 대략 20년으로 본 것이다.
사람의 수명이 길어진 오늘날 제퍼슨의 20년 혁명론은 근거가 빈약해졌다. 하지만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난 지 20년 만에 광주항쟁이 일어난 것을 보면, 우리 현대정치사에서 20년의 상징성은 크다. 광주항쟁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87년의 ‘6월 항쟁’이 올해로 스무돌을 맞는다. 6월 항쟁의 성과에 바탕을 둔 지금의 한국사회를 ‘87년 체제’라고 부르는 이들은, 그것을 뛰어넘을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제퍼슨처럼 말하자면, 새로 맺을 사회계약의 방향과 그것을 추동할 힘은 6월 항쟁 세대가 아닌, 새로운 세대한테서 나와야 한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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