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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성한용칼럼] 6월이 서글픈 사람들

등록 2007-06-05 17:42

 성한용 선임기자
성한용 선임기자
성한용칼럼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상 공무원의 중립 의무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한나라당 경선 후보들을 심하게 비판한 탓이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란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4시간짜리, 47쪽, 6만자가 넘는 강연 전문을 지금도 인터넷에 띄워 놓았다. 국민들에게 읽어달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지난 2일 연설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했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한때 노사모 회원이었던 한 인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괴롭다”고 했다. 과거 열혈 지지자들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재미있는 비유도 들을 수 있었다.

“대판 싸우고 헤어진 옛 친구가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것을 보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도 맞을 만한 짓을 했을 때 말이다.”

노 대통령은 연설에서 옳은 얘기를 참 많이 했다. 현 정부의 성과, 지역주의, 민주주의 등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두 가지가 문제가 됐다. 첫째, 선거법 위반 논란, 둘째, ‘세계적 대통령’이라는 자화자찬이다.

선거법 위반은 법률의 영역이다. 선관위에서 가리면 될 일이다. 선거법 위반이라는 결론이 내려져도,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할 것 같지도 않다. 겁만 줘서 입을 틀어막자는 계산일 것이다.

하지만 두번째는 차원이 좀 다르다. 과거 지지자들의 귀에도 거슬린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노사모라는 것을 고유명사로도 쓸 수 있지만, 그와 같은 사회참여 활동, 정치참여 활동을 보편적으로 그냥 노사모 활동이라고 보통명사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사모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약칭이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것이 곧 사회참여, 정치참여 활동이라는 말이다. 지나치다. 바로 이런 대목이 옳은 얘기조차 외면하게 만든다.

정치 지도자의 엄숙주의는 위선일 수 있으나, 겸손은 미덕이다. 노 대통령은 솔직하지만, 겸손하지는 않다. 주변 사람들도 그렇다. 강연이 열린 서울교육문화회관 대강당에는 현 정부에서 한 자리씩 ‘해 먹은’ 사람들이 많이 참석했다. 전직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 수석 비서관 등의 얼굴이 보였다.


2002년 12월 ‘호남’과 ‘젊은이’들은 노무현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세상을 바꿔줄 것으로 기대했다. 노 대통령 측근들에게 한 자리씩 ‘해 먹으라고’ 찍어준 것이 결코 아닐 것이다. 물론 노 대통령과 측근들도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다고 본다. 일을 하려면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그러나 미흡했다. 자리만 차지하고 일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도 그들은 웃고 박수치고 환호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어떤 사람들’은 분노와 서글픔을 삭이고 있다.

2002년에 ‘노무현 찍으라고 주변에 권고까지 했던 사람들’은 요즘 대개 술자리의 ‘죄인’이다. 고개를 잘 들지 못한다. 노 대통령도 참석했던 올 5·18 기념식의 마지막 순서는 ‘산 자여 따르라’라는 가요를 함께 부르는 것이었다. 한 참석자가 중얼거렸다. “내년에도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5·18은 신군부 쿠데타에 광주의 민중이 저항한 사건이다. 5·18 정신은 1987년 6월항쟁, 97년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그리고 10년 만에 신군부의 민정당 법통을 이어받은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다시 넘어가는 분위기다. ‘민주개혁 세력’의 지리멸렬 탓이다. 노 대통령의 책임은 어느 정도일까? 바야흐로 6월항쟁 스무 돌이다.

성한용 선임기자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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