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
야!한국사회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 시청률 순위를 보고 있으면 답답한 생각을 거둘 수가 없다. 드라마 시청률 5위권 안에는 늘, 저녁 8시대에 방송하는 〈한국방송〉의 일일 연속극과 주말 연속극이, 10위권 안에는 〈문화방송〉의 일일 연속극과 두어 편의 아침 드라마가 차지한다. 여기에 주말 저녁의 사극 두 편이 들어가고 나면, 주중의 드라마는 그저 한두 편이 고작이다.
지금의 시청률을 좌우하는 것은 확실히 중·노년 여성 시청자임이 분명해 보인다. 내 주변의 30대나 40대 초반으로, 늘 시청률 상위권의 일일·주말·아침 드라마를 즐겨 본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고, 20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 젊은층들은 드라마를 보지 않는 것일까? 우선 이들의 생활방식을 보면, 드라마는 고사하고 텔레비전을 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들은 대개 밤 10, 11시가 되어야 집에 들어온다. 밤 11시면 연속극은커녕, 9시55분에 시작하는 미니시리즈도 모두 끝나버린 시간이다. 이 오밤중에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은 자기 방에서 인터넷 속을 헤매다 새벽 두세 시에 잠이 든다.
하긴 20대만이 아니다. 30, 40대 직장인들도 저녁 8시 전후한 시간대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기란 매우 어렵다. ‘6시 칼퇴근’을 할 수 없고, 대개 퇴근 후 회식이나 약속으로 저녁 시간을 보내며, 게다가 회사와 집 거리가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서울·수도권 직장인들의 삶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이들의 생활이 이러니 직장에 다니지 않는 전업주부들에게도 8시 전후한 시간은 저녁식사를 준비하거나 밥을 먹는 등 어수선한 시간이다. 일찍 끝내고 9시 뉴스 보는 것도 힘겹다. 그러니 일일 연속극은, 노인과 그들이 데리고 있는 미취학 어린이들만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청장년층이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그리 큰 문제겠는가. 사실 문제는, 청장년들도 드라마를 본다는 것이다. 이들은 텔레비전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드라마를 시청한다. 방송사 사이트의 ‘다시보기’를 통해 유료로 시청하든, 아니면 ‘어둠의 경로’(?)를 통해 공짜로 보든, 하여튼 보기는 본다.
드라마 매체의 변화란 매우 큰 변화를 수반한다. 우선 자신이 보고 싶은 시간대에 보고 싶은 드라마를 골라 보며, 의자에 앉아 혼자 집중해서 드라마를 보게 된다. 그저 늘 켜져 있는 텔레비전을 소파에 누워서 혹은 식구와 잡담하며 보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따라서 이들은 집중해서 볼 만한 미니시리즈나,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를 보며 ‘미드족’, ‘일드족’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다. 이들은 다른 매체에서 다른 드라마 취향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청은 시청률 조사와는 무관한 것이다. 곧 지금의 시청률은, 인터넷이나 디엠비 등 다양한 매체의 시청을 도외시한 것으로 보편성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 그런데도 방송사들은 시청률에 매달린다. 매체 변화를 몰라서가 아니다. 여전히 시청률을 근거로 광고수익이 결정되고 방송사의 권위가 생기기 때문이다. 연출자들도 이 시청률로 자신의 점수가 매겨지고 그것으로 승진이 결정되니 시청률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그러니 미래지향적인 젊은 취향을 반영할 여지는 점점 사라진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 가는데, 이런 시청률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정황을 보면, 마치 가라앉는 배에 매달린 것처럼 느껴진다. 음반의 시대가 끝나고 음원의 시대가 왔음에도 음원 중심의 수익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대중음악계의 침체가 드라마 쪽에도 오지 말란 법이 없다.
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