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유레카
역사철학(historiosophy)이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1694~1778)다. 그는 자연과 역사를 평가하는 기준을 신이나 종교가 아니라 역사 자체에서 찾으려 했다. 그는 “나의 목표는 사소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정신의 역사를 쓰는 것”이라고 했다. 곧, 그에게 역사란 인간 정신과 예술이 진보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일의 의미를 찾고 역사 과정의 방향과 패턴, 목표와 추동력을 따지는 것이 역사철학이다. 이를 집대성한 사람은 독일 철학자 헤겔(1770~1831)이다. 그가 보기에 역사는 절대자의 자기실현 과정이다. 그런데 이성이 바로 절대자이고 그 본질은 자유이므로, 역사는 결국 자유가 스스로를 전개하는 과정이 된다.
역사철학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던 이성의 시대에 태어났다. 그래서 역사철학자들은 지난 역사에 관한 한 대개 진보를 말한다. 하지만 현재와 미래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 진보파는 현재를 개혁해야 진보가 계속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보수파는 지금이 최선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당시 프로이센을 역사의 정점으로 생각한 헤겔은 그래서 보수파로 꼽혔고, 냉전 종식과 함께 ‘자유민주주의=역사의 종언’이라고 주장한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1952~)도 마찬가지다.
신언상 통일부 차관이 얼마 전 정부의 대북 쌀 지원 유보 방침에 대해 설명하면서 “역사철학적인 문제”라고 했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누가 봐도 만족스럽지 않다. 여기서 남쪽을 한국사의 정점에 놓으면 보수적 역사철학이 되고, 적극적 분단 극복 노력을 통한 새로운 질의 역사 창출을 지향하면 진보적 역사철학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합리적 진보’로 규정한 참여정부가 과연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역사철학을 갖고 쌀 지원 유보를 결정했는지 궁금하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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