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칼럼
상위권 대학들의 학교생활기록부(내신) 무력화 움직임을 두고 정부가 재정 지원 중단 가능성을 경고하자, 한 일간지는 사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더 나은 인재를 뽑겠다는 대학에 다짜고짜 주먹부터 휘둘러대는 폭력 교육부를 이대로 둬선 대한민국 대학 경쟁력, 교육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없다.” 이 사설의 제목은 ‘대학 경쟁력 목 조이는 폭력 교육부’였다.
대학 경쟁력이 우리 교육계의 주요한 담론이 된 지는 오래됐다. 비판 소지가 있긴 하지만,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인재 육성을 맡은 대학으로선 피하기 힘든 논의다. 특히 우리 대학은 외국 평가기관으로부터 형편없이 낮은 평가를 받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물론 외국의 대학 평가기관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주로 인용되는 게 영국의 〈더 타임스〉와 미국의 〈뉴스위크〉 평가인데, 모두 영어권인데다 평가 잣대도 실용주의에 치우쳤다는 지적을 받는다. 게다가 유학생 덕에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나라들이니 장삿속도 무시할 수 없겠다. 실제 2006년 〈더 타임스〉가 선정한 100위권 안에는 미국 대학 33곳, 영국 대학 15곳이 포함돼 있다. 2006년 〈뉴스위크〉 순위엔 미국 43곳, 영국 15곳이 100위권에 들었고, 10위권엔 미국(8)과 영국(2) 대학뿐이다.
이런 형편을 고려하더라도, 세계에서 입학하기 가장 어렵다는 우리 상위권 대학이 받은 평가는 너무 참담하다. 서울대만이 〈더 타임스〉 평가에서 2005년에야 100위권에 진입했고, 2006년엔 63위에 올랐다. 〈뉴스위크〉 2006년 순위에선 서울대 148위, 연세대 302위, 고려대 427위였다. 언제 세계 대학 순위가 높아, 우리 경제가 발전했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은 피해는 요즘 직접적이고 현실적이기에 외면할 수 없다. 우수한 두뇌들이 대거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천문학적 규모의 돈이 유학 혹은 연수 비용으로 유출된다. 제3 세계의 우수한 인재들은 한국 대학을 외면한다.
중·고교 때까지만 해도 우리 학생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학력을 자랑한다. 그런 학생 중에서도 성적 우수자만을 독점해 온 대학들이 이 정도 평가밖에 받지 못했으니, 입이 열이라도 할 말이 없다. 사실 이들 대학은 성적순 선발로 브랜드 관리만 했지, 교육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은 거의 외면했다. 수재를 입학시켜 바보로 졸업시킨다는 힐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 대학이 찾아낸 핑계가 바로 고교 평준화 및 대학 본고사 불가 정책이다. 학교 서열화, 교육 양극화, 교육을 통한 부와 사회적 지위의 대물림에 익숙해진 기득권층도 여기에 가세했다. 이들은 이 정책을 고집하는 이들에게 ‘대학 경쟁력을 목 죄는 폭력배’라고 매도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평가 항목에 신입생 선발제도를 포함시킨 기관은 한 군데도 없다는 점이다. 〈더 타임스〉는 대학의 상호평가(40%), 교수와 학생 비율(20%), 논문인용 지수(20%) 등을 중시한다. 〈뉴스위크〉는 연구성과(50%)와 교육 여건(40%)을 중시한다. 우리 대학의 낮은 순위는 저조한 연구실적과 열악한 교육 여건,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진 대학 규모 탓일 뿐이다.
‘인재를 천재로 키우는 것을 막는 것은 획일화된 교육시스템’이라는 지적은, 요즘 기득권층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이건희 회장의 말이다. 교육시스템을 신입생 선발제도로 오독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위권을 싹쓸이한 미국이나 영국에 오로지 성적순으로 학생을 뽑는 대학은 없다. 대학 서열 지키기에 안주하는 입시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 대학의 경쟁력 논의는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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