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원/문학평론가·<비평과 전망> 편집주간
야!한국사회
구석기 시대 탐라국의 집단취락 지역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풍문으로만 존재했던 탐라국의 육체가 세상에 처음으로 드러난 셈인가. 제주도가 고향인 절친한 벗에게 이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들은 바 없다는 사실에 자못 놀랐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내게 알려주었다. 탐라국과 관련한 사료나 유적을 찾아보긴 어렵다. 사료라고 해 봐야 기원전 3세기 중국의 위진 시대를 살았던 진수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간략히 언급된 것이 전부라는 얘기다. 그렇게 본다면 역사 속에서 탐라국의 기억은 제주의 거친 바람에 쉼없이 풍화되어 간 것인가.
탐라국이 정확히 언제 육지의 전제왕권에 복속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수없이 제주도를 넘나들면서 깨닫게 된 것은,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육지 것들’은 아름다운 이 섬을 유배와 학살, 또는 삼별초와 같이 외부세력과의 항전의 장소로 그 성격을 거칠게 변질시켰다. 특히 대한민국 건국 직후 4·3 와중에 자행된 제주도민 무차별 학살은, 1980년 광주에서의 학살이 그러하였듯, 제주도를 마치 내부 식민지처럼 여겼던 ‘육지 것들’에 대한 섬사람들의 심층적 공포와 불신의 기원이 된 듯하다. 많은 제주인들이 이 끔찍한 학살 와중에 일본으로 탈출했는데, 지난해 오사카의 이카이노 지역 한인촌에 가니 돌하르방과 제주 출신이 유독 많았던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그런 제주를 두고 육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삼다도 이미지다. 실제로 돌과 바람은 많지만, 여자가 많다고 한 것은 지속적인 전란의 와중에 결기가 있거나 똑똑한 남성들이 죄다 비명횡사한 것의 결과인데, 이것이 왜곡된 듯하다. 제주감귤도 빠질 수 없다. 관광산업과 함께 제주의 기간산업인 감귤산업은 지속적인 품종 개량에도 불구하고, 수입산 오렌지 등에 밀려 가격 하락을 면치 못하다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구조적인 된서리를 맞게 되었다. 그리고 남는 것은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의 가사로 시작되는 <제주도의 푸른 밤>이라는 대중가요의 이국적 로맨티시즘이다.
제주도는 한반도인가.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영해, 그리고 부속도서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주도는 부속도서에 속하는 것일까. 나는 항상 이것이 궁금했는데, 그것은 나 자신이 스스로를 명예 제주도민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서울내기인 내게 제주도민이 될 것을 요청한 바 없지만, 내 마음은 항상 명예 제주도민이었고, 동시에 자칭 명예 제주 홍보대사였다.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을 읽었던 대학시절부터, 그 이후 제주 출신 벗들과 교유하고부터 제주도는 내게 또 하나의 고향처럼 느껴졌다. 수년 전에 제주도의 한 대학에 비행기로 오고가며 피로한 시간강사 생활을 마다지 않았음도 그런 까닭이었다. 그때의 제자들은 지금 무엇이 되어 있을까.
제주도는 현재 특별자치도의 행정체제를 꾸려 가는 와중이고, 국제자유도시로서의 면모도 갖춰 나가고 있다. 동시에 4·3으로 상징되는 역사적 비극에 대해 대통령이 정부를 대표하여 공식 사죄하면서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내가 이 짧은 칼럼에서 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는 이렇다.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지 불과 2년이 지났을 뿐인데, 이와는 그 성격이 완전히 대립적인 군사기지를 제주도에 건설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언어도단이다. 제주도의 평화와 번영이 군사기지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가. 명예 제주도민도 입은 열려 있어 말하노니, 관계당국은 군사기지 건설 계획을 즉각 백지화하기 바란다.
이명원/문학평론가·<비평과 전망>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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