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책·지성 팀장
유레카
‘권력의지’는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가 죽은 뒤 그의 여동생이 오빠의 유작을 모아 편집한 책의 이름이다. 여동생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태어나지 않았을 이 책 때문에 ‘권력의지’는 니체의 서명이 들어간 말 가운데 가장 유명한 말이 되고 말았다. 권력의지 말고도 니체의 사유에서 연원하는 또 하나의 의지가 ‘건축의지’다. 니체라는 원석에서 이 말을 뽑아내 지식계에 유통시킨 사람이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이다. 가라타니는 〈은유로서의 건축〉에서 ‘건축의지’라는 말을 제시하고 그 의미를 분석했다. 건축이라는 것을 하나의 은유로 이해한다면, 플라톤 이래 서양의 사상사는 사유의 건축물을 지으려는 의지로 충만한 역사였다는 것이 가라타니의 설명이다.
“건축의지는 서양 사유의 토대다.” “데카르트는 견고한 사유의 건축물을 짓기 위한 하나의 모델로서 도시 설계자의 은유를 개발했으며, 헤겔은 지식이란 체계적이고 건축적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헤겔이 사유의 대건축물을 지어놓고 그 그늘에 가려진 조그만 오두막에 살았다고 비웃었던 키르케고르조차도 건축의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고 가라타니는 꼬집는다. 20세기에 서양 형이상학의 토대를 무너뜨리려 한 철학운동을 ‘해체주의’라고 부르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가라타니는 건축의지가 곧잘 인간의 터무니없는 오만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도 그 의지 자체를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건축의지에는 인류의 이상과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경부운하’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거칠다. 운하를 만들고 세우려는 건축의지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은 권력의지다. 권력의지야말로 건축의지로 표출된 내면의 진정한 의지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의지 자체를 비난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의지가 좀더 이상적인 삶의 질서를 구축하고 실현하려는 의지로 나타난다면 더 아름다울 것이다.
고명섭 책·지성 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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