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논설위원
유레카
영어 ‘시어머니’(Mother-in-law)의 철자 순서를 바꾸다 보면 ‘여자 히틀러’(Woman Hitler)가 나온다. ‘기숙사’(Dormitory)는 ‘더러운 방’(Dirty room)으로 바꿀 수 있다. 단어의 철자 순서를 이리저리 바꿔 이렇게 새 단어를 만드는 것을 애너그램이라 한다. ‘경제학’(Economics)은 어떤 애너그램이 가능할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우스꽝스런 코’(Comic nose)일 것이다.
서양 학문을 먼저 받아들인 일본인들은 ‘이코노미’(Economy)를 ‘경제’로 번역했다. 중국 수나라 때 왕통이 편찬한 책으로 알려진 <문중자>(文中子)에 나오는 단어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경세제민’을 줄인 것이다. 이코노미는 애초 ‘가정’(oikos)과 ‘다스린다’(nem~)는 뜻이 합쳐진 것이고, 이를 다루는 학문은 ‘가정관리학’에 더 가까왔다. 그래서 근대의 지성들은 나라의 살림살이를 고민한 ‘정치경제학’자였지, ‘경제학’자가 아니었다.
자유주의 경제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오늘날 주류 경제학은 ‘경세제민’에는 관심이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따지지 않고, 경제의 운동 법칙만을 탐구한다. ‘효율’을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시장지상주의자들은 “시장의 결정이 곧 정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불공정한 세상살이에 대해 “어쩌냐? 그게 시장논리인데 …”라고 넘어간다. 환자의 멀쩡한 손가락을 잘못 자른 군의관이 “어쩌냐? 여긴 군대인데 …”라고 했다는 슬픈 우스갯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경제학이 ‘우스꽝스런 코’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국가의 구실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도, 그 중요성엔 변함이 없다. 핵심은 ‘경세제민’이다. 정치인들이 대선을 겨냥해 여러 경제 공약을 내놓고 있다. 화려함이 아니라, 경세제민하려는 의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건 어떨까?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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