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책·지성팀장
유레카
메디치 가문의 복귀로 관직을 잃고 정치적 시민권을 빼앗긴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는 1513년 피렌체를 떠나 산탄드레아 시골집에 은거했다. 마키아벨리는 고독했다. 고독 속에서 그는 책을 읽었다. “저녁이 오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서재로 들어가네. 문 앞에서 온통 흙먼지로 뒤덮인 일상의 옷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지. 예절에 맞는 복장을 갖추고 나서 옛사람들이 있는 옛 궁정에 입궐을 하는 셈일세.” 말하자면 그것은 엄숙하고 경건한 책읽기였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옛 로마인들이었다. 그는 고전을 읽었다. 고전 읽기는 유쾌한 만남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나는 그들의 따뜻한 영접을 받고, 오직 나만을 위해 차려진 음식을 맛보면서, 그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지.”
마키아벨리에게 책읽기는 거짓 없는 만남이었고 흥겨운 대화였고, 몰아적 체험이었다. “이 네 시간 동안만은 나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네. 모든 고뇌는 잊혀지고, 가난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느끼지 않게 되지. 그들의 세계에 전신전령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네.” 자신의 독서 습관을 털어놓은 이 편지는 그의 놀라운 사상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가늠케 해준다.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는 <마키아벨리의 고독>이란 글에서 희대의 걸작 <군주론>을 ‘낯선 친숙함’이란 말로 설명한다. 낯설고 불쾌하고 공포스러우면서도 왠지 친숙하고 매혹적인, 외면하려고 해도 외면할 수 없는 그 텍스트는 저 고독한 집념의 책읽기에서 탄생했던 것이다.
<한겨레> 최근 보도(7월2일치 7면)를 보면, 대선 주자 대다수가 속독·약독의 달인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훑어 읽기나 요점 읽기로 단편적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언정 밀도 높은 지식이나 통찰에 이르기는 어렵다. 진지한 만남, 속 깊은 대화의 책읽기가 아쉽다.
고명섭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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