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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법은 인권의 무덤인가? / 정정훈

등록 2007-07-25 17:40수정 2007-08-24 18:02

정정훈/‘공감’ 변호사
정정훈/‘공감’ 변호사
야!한국사회
‘법은 인권의 무덤인가?’ 경찰의 지휘에 따라 회사 쪽이 이랜드 농성장을 용접해 봉쇄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부당한 해고와 외주용역에 저항하는 파업을 공권력이 ‘법대로’ 진압하는 사태를 지켜보며, 변호사로서 살아가는 자신에게 묻고 또 묻는 질문이다.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국가로부터의 자유’ 못지않게 ‘국가를 향한 자유’도 인권의 전략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법을 인권의 무덤으로 집행하는 현실 앞에서 그 믿음은 초라하다.

자율적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한 공권력 투입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때 ‘불법 파업’의 실체적 정당성을 변호하던 노동전문 인권변호사이자, 노동운동 탄압을 몸을 던져 막아내던 대통령과 노동부 장관의 ‘변화’된 인식에 대한 질책도 그 중 하나다. 그 변화는 고속철도(KTX), 포스코, 공무원노조 사건에서 일관된 ‘법대로’의 태도에 비추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은 인권의 무덤인가?’라는 당혹스러운 질문과 마주한 이상, 이 새삼스러울 것 없는 ‘변신’을 통해 새삼스러울 것 없는 한 가지만 분명히 하자.

법은 모순적 실체다. 강자의 논리가 관철되는 장소이지만, 약자의 주장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입법 과정에서 사회적 타협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타협 속에서도 법의 모순은 그대로 존재한다. 더욱이 그 타협은 항상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조건으로 이루어지므로, 타협된 모순의 무게중심을 가늠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그 모순을 바라보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이다. 법을 대하는 인식이 뿌리를 내려야 하는 지점은 그 모순이 딛고 있는 불평등한 사회적 현실의 지반이다. 법을 불평등한 현실로부터 분리하여 바라볼 때, 법의 모순은 긴장을 상실하고 준법 논리만이 남는다. 모순적 현상에서 대립면을 놓친 일방적 시선은 위험하다.

3년 남짓의 자칭 ‘인권변호사’가 30년이 넘게 그 긴장 속에서 법과 대면했을 공인된 전직 인권변호사들께 감히 묻는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법과 법적 정당성을 의문에 부치던 그 때의 신념이 이제는 삶의 자세와 분리된 것인지, 아니라면 대통령, 노동부 장관이라는 소임의 체계와 관료주의적 행정에 갇혀 법을 집행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그 긴장을 잠시 철회한 것인지. 위치와 역할의 이동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준법의 요구와 사회적 정당성의 가치를 가늠해 보는 진지한 노력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불평등한 사회에서 법’은 평등한가, 불평등한가? 법이 그 불평등한 현실의 조건을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법적 정당성의 명분으로 그 현실을 고정하거나 은폐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평등의 조건에 개입하지 않는 법으로써 ‘보호’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자유 없는 평등’이거나 ‘평등 없는 자유’이며, 그 실질은 자유도 평등도 없는 위선의 질서일 뿐이다.

이랜드 사태는 법 조문과 법 정신 사이에 놓인 괴리 때문이라기보다는 불평등한 현실을 대면하는 안일하고 무딘 그 법의 정신 때문에 야기된 것이다. 이른바 비정규직보호법의 실질적 보호 대상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정규-비정규의 위계질서 자체였다. 그것이 이랜드 노동자들의 저항을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다.

‘법은 인권의 무덤’이라는 일면적 선언으로부터 약자의 법을 방어하자면 불평등한 현실과 법의 관계를 통해 그 정당성을 점검하는 인식의 긴장이 함께해야 한다. 이랜드의 경험이 내 주머니 속의 송곳이 되어, ‘불평등한 사회에서의 법’을 바라보는 나의 무딘 의식을 일깨우는 각성으로 계속되길 바란다.

정정훈/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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