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책·지성팀장
유레카
소설가 황석영씨의 신작 <바리데기>에 쏟아지는 독자의 반응이 뜨겁다. 알다시피 <바리데기>는 전통설화 ‘바리공주’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버림받은 일곱째 막내딸이 아픈 부모와 아픈 세상을 구하려 간난신고를 무릅쓰고 지옥 너머 서천까지 가 생명수를 얻어온다는 이야기다. 황석영씨는 이 설화를 우리 시대의 서사로 바꾸었다. 전작 <손님>에서도 실험한 바 있는 전통굿의 요소를 더 과감하게 살리고 남미에서 융성한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을 능숙하게 변용함으로써 그는 우리 소설의 서사 양식을 저만큼 확장했다. 소설의 주제로 들어가면 작가의 문제의식이 더욱 도드라진다. <바리데기> 이야기는 현재적이자 예언적이다. 지옥 불구덩이보다 더 끔찍한 시대의 현장을 통과하면서 이 모든 고통의 원인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 종교도 있다.
“검은 정장에 넥타이를 맨 개신교 목사, 검고 긴 가운을 걸친 가톨릭 사제, 흰 천을 감고 어깨를 드러낸 힌두의 바라문, 장옷에 머리에는 흰모자를 얹은 무슬림 이맘, 노란 가사를 걸치고 머리를 박박 깎은 불승, 턱수염에 검고 둥근 카파 모자를 쓴 유대교 랍비, 그들은 모래 위에 가까스로 서서 제각기 알 수 없는 소리로 떠들고 있다. … 그들은 목청껏 떠들지만 서로가 남의 말을 삼켜버리려고 더욱 큰 소리를 내기 때문에 뒤섞여서 아무런 의미도 전하지 못한다.”
주인공 바리는 육체의 밑바닥, 그러니까 세상의 밑바닥을 그 밑바닥보다 더 낮은 자세로 어루만지는 발마사지사다. 그 바리에게서, 그 바리의 쓰라린 유전을 통해서 작가는 절망 너머의 희망을, 죽음 너머의 생명을 발견한다.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선 안 된다.”
고명섭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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