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유레카
러시아 제국의 남하정책으로 비롯된 러시아-터키전쟁(1877~1878년)에서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은 간호부대 표시로 적십자 대신에 적신월(赤新月)을 사용했다. 원래 적십자 표시는 1863년 국제적십자위원회 창설을 주도한 스위스에 경의를 나타내고자 스위스 국기에서 색깔만 바꿔 따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슬람국인 오스만은 기독교를 연상시키는 십자 표시가 병사들에게 거부감을 줄 것을 염려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로부터 오스만 정부의 결정을 전해들은 러시아는 적신월 표시를 존중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오스만도 적십자 표지를 단 러시아 부대를 존중했다.
붉은 초승달 무늬인 적신월은 1929년 제네바 협약이 개정될 때 처음으로 국제적인 공인을 받았다. 초기에는 터키와 이집트에서만 적신월 표지를 사용했지만, 차츰 다른 무슬림 나라들이 뒤따랐다. 1974년 파키스탄에 이어 말레이시아(1975), 방글라데시(1989)가 자국의 구호봉사기구 표지를 적십자에서 적신월로 바꿨다. 현재는 국제 적십자·적신월사연맹에 가입한 185국 가운데 서른세 나라가 적신월을 쓰고 있다.
적신월의 유래가 된 초승달 무늬는 3세기 초부터 7세기 중반까지 중동지역을 지배했던 사산왕조 페르시아(현 이란)에서 왕권을 의미했다. 사산왕조 왕관에 장식됐던 신월은 그 후 이슬람 왕국에서도 권력의 상징으로 계승됐다. 오스만 제국 때는 국기에 그려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세속적인 의미보다는 무슬림의 정체성과 형제애를 뜻하는 문양으로 변했다.
우리 정부가 탈레반과 대면 협상의 중재를 국제적신월사에 요청했다. 아프가니스탄 적신월사는 1987년부터 국제기구와 함께 아프간에서 전쟁 피난민 돕기 등 각종 구호활동을 벌여 왔다. 적신월의 인도주의 정신이 탈레반 무장세력을 감복시키기를 꿈꿔 본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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