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
야!한국사회
이달 초 교육부가 내놓은 교원 자격에 대한 개정안을 보고 나는 한숨부터 나왔다. 교대·사대 학생이라도 졸업학점이 평균 75점 이상이 되어야만 교사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안이었다.
우리나라 대학은 들어가기는 어려워도 졸업하기는 쉬운 곳이며, 그래서 대학생의 실력이 낮다는 생각,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선진국의 대학들처럼 학점 관리도 철저하게 하고 과제도 많이 내주어 열심히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통념화되었다. 물론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대학생한테 공부실력이 떨어지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자.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의미는 독특하다. 대학생활이란 고등교육 과정을 이수하는 과정일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어른으로 성장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것이 중요해지는 것은, 선진국들과는 달리 고등학교까지의 삶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을 지독하게 억압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하기까지는 자신의 삶과 인간과 세상에 대한 생각은 입시에 도움이 안 되는 ‘잡생각’으로 치부하고 모조리 중지시킨 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스케줄에 따라 잠도 못 자고 뺑뺑이를 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먹고사는 일이 바쁘고 복잡해져 자신의 인생, 인간과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할 여가가 없다. 그러니 대학 4년이란 기간은, 일생을 통틀어, 당장의 절박한 의무로부터 놓여나 삶과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그 기간에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일생을 살아야 하는지, 인간이란 게 뭔지 등에 대한 여러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이로써 비로소 어른이 된다. 지금의 중장년들은 다 이렇게 성장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노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그 여유로움 속에서 자신이나 세상과 대면하며 어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이것을 하지 못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꽤 조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입시 중압감은 가히 살인적이어서 성적에 매달려 죽고 산다. 그런데 요즘은 대학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학부제 시행 이래로 학생들은 2년 후 ‘좋은’ 전공으로 들어가고자 학점벌레가 된다. 진짜 실력을 높이는 것보다는, 일단 학점을 잘 따는 요령을 발휘하고, 학점이 낮으면 부모까지 동원하여 학점 구걸도 마다지 않는다. 중고교 6년 동안 하던 짓을 다시 2년 연장하는 것이다.
전공이 정해지면 학생들은 정말 지친다. 그래서 대개 이때 군대를 간다. 그리고 제대하고 와서는 이제부터는 취직 공부에 매달린다. 그리고 졸업 후에도 3, 4년이 되어야 비로소 취업이 된다. 그래서 이들은 취업이 되고 나서야, 이제 비로소 자신에 대해 고민이란 것을 할 수 있다. 요즘 신입사원들이 정신적 성숙이 계속 유예된 서른살 사춘기 소년들 같고, 직장 적응력은 훨씬 떨어지고, 이직률도 높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서른 살에 직장을 뛰쳐나와 무슨 과감한 시도를 해볼 수 있으랴. 그들은 다시 의대·약대·교대에 들어가기 위해 입시에 매달린다.
대학생을 조이는 것이 공부 실력을 어느 정도 높여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등교육 과정에 반드시 키워야 하는 문제제기 능력, 사려 능력, 통찰력, 자립심과 책임감 같은 것은 조이기만 한다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경험과 생각할 만한 여유야말로 대학생의 진짜 실력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