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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천하장사 마돈나, 그 이후 / 정정훈

등록 2007-08-15 18:15수정 2007-08-24 18:00

정정훈/‘공감’ 변호사
정정훈/‘공감’ 변호사
야!한국사회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한 소년은 여자가 되기 위해 모래판에 올라 씩씩하게 세상과 샅바를 겨룬다. ‘성 정치학의 민감한 문제를 성장영화의 문법으로 풀어낸’(변성찬) 이 경쾌한 영화는 동구가 여장을 한 채 마돈나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살고 싶었던’ 동구는 자신의 꿈대로 여자로서 살 수 있게 된 것일까? 존재의 뒤집기에 성공한 것일까? 영화적 상상력을 현실에 붙들어 매려는 시도가 미안하지만, 잠시 영화 밖으로 나와 그/녀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1. 법적인 성별을 정정하려면 성전환 수술을 해야 한다. 동구가 씨름대회 상금 500만원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성전환 수술비 2000만원을 충당할 수 있었을까? 걱정이다. 게다가 다른 질병이 있어서 성전환 수술이 어려운 조건이라면 낭패다. 뿌리부터 완강하게 성별화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수술밖에 없다고 한다. 그나마 동구가 여자가 되어야 해서 조금은 다행이다. 여자에서 남자로의 수술은 현재의 의학 수준으로도 매우 위험한데다, ‘사용가치’가 별로 없는 ‘상징’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더 많은 비용으로 만들어서 법적인 성별과 교환해야 한다.

#2. 수술을 했다고 하더라도 고등학교 1학년인 동구는 아직 자격이 없다. 성년이 될 때까지는 존재의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슬픔들을 견뎌내야 한다. 저 먼나라 독일에서는 이런 규정이 위헌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린 지 오래지만, 이 땅에서는 그런 진지함이 소통되지 않는다. 그리고 성년이 되어서는 군대 면제 도장을 받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법원도 병역의무와 관련된 문제에 대한 이 사회의 광기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법원은 존재의 근원을 결정하는 문제를 국방부에 애써 양보하며, 사회적 비판이 닿지 않는 안전거리를 확보해 놓았다.

#3. 아울러 아들을 딸로 인정하겠다는 아버지의 확인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가드 올리고 상대방 주시”하라던 마초적 가부장인 아버지가 “호적 파가라”고 버럭 성을 내버리면 일이 어려워진다. 딸이 되기를 원하는 아들을 남자로 만들겠다며 군대에 보내버린 아버지 때문에 눈물로서 군대 생활을 했던 동구의 친구도 있었다. 사회적 편견이 가족질서 안의 권위라는 형식으로 드러나는 경우에도, 법은 그 편견의 부당함을 단호하게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편견 자체를 적극적으로 해소해 나가는 구실을 하여야 한다. 그러나 법원은 가부장적 권위에 법적 정당성을 종속시킨다. 부당한 ‘아버지의 법’을 ‘큰 아버지의 법’(대법원 지침)으로서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쓸쓸하다.

2007년 현재, 위와 같은 동구의 현실을 규정하는 것은 형식적 의미의 ‘법’이 아니라 대법원의 ‘지침’이다. 대법원은 2006년 6월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최초의 결정을 한 바 있다. 이 결정은 창조질서를 선언한 ‘말씀’으로는 성별 정정이 허용될 수 없다는 종교인들의 거친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 논란의 와중에서, 대법원은 입법 공백을 우려하며 ‘지침’의 형식으로 찬반양론에 걸친 위험한 줄타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손쉬운 절충의 자리에는 진실의 공간이 없다. 절충의 시도가 근거하고 있는 ‘편견’과 ‘현실’을 드러내는 고통스러운 노력만이 변화의 가능성과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희망? 너 그게 나한테 얼마나 잔인한지 알아?” 영화 속의 동구가 현실의 우리들에게, 그리고 대법원에게 질문하고 있다.

정정훈/‘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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