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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법률비평가는 왜 없는가 / 이명원

등록 2007-08-22 17:44

이명원/문학평론가
이명원/문학평론가
야!한국사회
어제 신문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법원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와 유족에 대해 1975년 법원 판결의 불법성을 인정해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국제적으로도 ‘사법살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사회 일각에서 꾸준히 그 불법성이 논의되어 왔으며, 권력을 비호하는 데 앞장서 왔던 법적 오용의 대표적인 사례로 간주되어 왔다. 그런 점에서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법원 자신이 과거의 사법적 오판의 실체적 진실을 인정하고 국가배상 판결을 판시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가 하면 또 이런 내용도 있었다. “법원은 ‘기업인 범죄’에 역시 관대했다.” 경제개혁연대가 200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 혐의에 대한 판결을 분석해 보니, 기업의 지배주주나 임원 가운데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비율이 강·절도 등 일반사범보다 현저하게 높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국민들의 일반적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사결과”라는 분석이 덧붙여졌다.

오늘의 현실에서 법의 정의에 자신의 권리를 호소하는 집단은 많은 경우 사회적 약자이기보다는 강자인 경우가 많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일단 법적 지식에 대한 접근 통로가 사회적 약자에게는 제한되어 있다. 일단 법률 용어 자체가 오늘의 일상어와는 현격히 다른 일제강점기의 일본어식 번역투로 점철된 것이어서, 일반인들이 법률 용어를 순조롭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재판을 통해 얻을 “실익이 없다”고 하면 될 것을 오늘의 법관들은 여전히 “구할 이익이 없으므로”라는 법률적 관용어와 문체를 애용한다. 법률 용어 자체가 변화하는 현대의 일상적 언어감각과 현저하게 괴리되어 있는 것이다.

동시에 법적 소송에 따르는 절차의 복잡성과 경제적 비용의 문제는 법의 정의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회복하고자 하는 사회적 약자의 접근을 막는다. 예를 들어 생존의 절박함 때문에 당장의 생계가 어려운 부당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개인적인 차원에서 법적 소송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변호사 수임료를 포함한 법적 비용은 물론이고, 수년에 걸쳐 지루하게 지속되는 재판과정 속에서 생계를 유지할 만한 경제적 토대가 붕괴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오히려 기업집단은 의도적으로 노사 간의 가파른 갈등의 해법을 엉뚱하게도 법원의 판결에 위임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법대로 하자”는 것이다.

이런 사실과 함께, 판사의 사회영역에 대한 전문지식의 부족 탓이건, 판사 개인의 세계관과 이데올로기 탓이건,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의 구속성 때문이건 판결의 ‘오판 가능성’에 대한 판례 차원에서의 비평적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도 문제시되어야 한다. 나는 오늘의 사법적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판례 비평’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법적 현실을 보면 판례에 대한 ‘해설’은 난무하지만, 이에 대한 체계적인 ‘비평’은 부재한다. 사회의 여타 부문의 담론에서는 비평의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는데, 왜 법률 영역에서는 판례에 대한 비평적 기능이 실종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수의 예술비평가도 있고 경제비평가도 존재한다. 그런데 삶의 가장 구체적인 국면에서, 개인과 집단의 이익과 손해를 수시로 판단하게 되는 판결에 대한 예리한 검토 작업을 담당하는 법률비평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이 전인미답의 영역에 등장해 법의 정의에 대한 기탄없는 분석과 비평을 해준다면 좋겠다. 법원을 들락거리다 보면, 이런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이명원/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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