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야!한국사회
이제 우리말로는 대체어를 찾을 수 없이 고유어처럼 변해버린 ‘인프라’라는 단어는 시멘트와 미세먼지 그리고 6가 크롬과 같은 부정적 어감과 함께, 국내총생산(GDP), 경기진작 그리고 부국강병이라는 이미지를 동시에 갖는다.
원론적으로는 <자본론>의 마르크스가 이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가 이 ‘인프라’라는 말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바로 그 원저자이기 때문이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라는 사적 유물론 용어 중 하부구조의 원어가 바로 ‘인프라스트럭처’이다. 전두환 시대에 이런 단어를 공공연히 입에 올리면 경찰에게 잡혀갔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인프라라는 말만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골프장과 격자형 도로, 그리고 경부운하까지 인프라라는 용어로 찬양하는 대한민국의 이상한 경제 인식은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원을 명확히 하자면, 인프라라는 용어는 좌파 경제학이 기원이다.
한국의 이명박식 우파들은 요즘 이 마르크스의 용어인 하부구조를 튼튼히 하자는 말에 정치적 생명을 걸었고, 2007년 현재 이 시대착오적인 주장의 핵심은 경부운하에 축약되어 있다.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보다 몇 배는 더 물질숭배적이고 경제환원주의적인 이명박식 우파의 흐름은 이제 반전이 어려울 정도의 한국판 ‘시멘트 자본주의’의 기층을 형성한다. 그러나 한반도를 하나의 국토생태로 보고, 각 지역을 경제적 재순환이라는 눈으로 볼 때, 경부운하가 설 수 있는 생태학적·경제학적 토대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하천생태와 지천생태를 죽여야 사는 경부운하는, 국토생태와 국민경제를 죽이는 상부구조적 물신주의일 뿐이다. 그리고 공공의 돈은 운하길을 따라 거꾸로 서울로만 올라갈 것이다. 요즘은 ‘블랙홀 효과’라고 부른다.
투입자본이 중장기에 걸쳐 수익을 공공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을 표준경제학에서는 인프라라고 부른다. 그 효과만 있으면 정부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케인스 우파’라고 부르고, 경부운하는 케인스 우파적 발상이다. 그리고 그 투자가 다른 투자보다 더 쓰임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왈라스의 일반균형 이론이라고 부른다.
그 이론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경부운하 대신에 경부선을 따라 공공 보육시설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더 유익하다. 도저히 부부 맞벌이로 가사보육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보육시설을 만들고, 여기에 똑같은 자금을 투입하는 것도 똑같은 건설투자 효과가 있고, 산업적으로 건설물량도 만들어주며, 장기적으로 민주주의 효과도 갖는다. 같은 분석으로, 경부선을 따라서 아주 훌륭한 공공도서관들을 짓는 것이 더 훌륭한 인프라 효과를 만든다. 분석 변수에 따라서는 1차원적인 물류 이동보다는 가난하고 책을 접하기 어려운 다음 세대에 지식을 전하고 기회를 열어주는 도서관이 장기적으로는 더 고차원적이고 입체적인 통합 효과를 발생시킬 것이다. 같은 분량의 시멘트를 투입한다면, 산업전후방 연관효과는 동일하지만, 사회적 네트워크 효과는 훨씬 높다. 반면 보육시설과 도서관은 경부운하 같은 생태적 부작용은 거의 없다. 이러한 사회적 인프라의 지역경제에 대한 네트워크 효과가 경부운하보다는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다.
초기 동구 사회주의 독재자들 역시 이명박 후보처럼 열심히 건설하고, 국토에 시멘트를 쏟아 부었다. 이런 시멘트 사회주의, 아픔만 남기고 독재라는 비난 속에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실패한 시멘트 사회주의의 길을 다시 따를 것인가? 시멘트, 김일성이 평양에도 엄청 쏟아 부었다. 시멘트 자본주의로 선진국 된 나라는 일찍이 없었다. 이제 그만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우석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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