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책·지성팀장
유레카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막스 베버(1864~1920)가 죽기 1년 전 독일 뮌헨대학 학생들에게 했던 강연이다. 직업 정치인의 자질에 관한 통찰이 빛나는 글이다. 강연문에는 ‘저널리스트’라는 아주 짤막한 장이 들어 있다. 9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생생하게 현재적이다. 기자라는 신분이 앞에선 환대받고 뒤에선 경멸받는다는 점을 지적한 대목이 그렇다. 대중정치의 시대에 언론이 ‘데마고그’ 노릇을 최전선에서 하고 있다는 지적도 기억할 만하다. “현대의 선동정치도 연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대의 선동정치는 인쇄된 말을 한층 더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치평론가와 특히 저널리스트가 오늘날 이런 종류의 사람들 중 가장 중요한 대표자입니다.”
이 글에서 새삼 기억할 만한 것은 저널리스트를 대하는 베버의 균형 잡힌 시각이다. 저널리스트는 자주 ‘윤리적으로 가장 열등한’ 종류로 평가받는다. 무책임한 저널리스트들이 저지르는 왜곡·거짓 보도의 파괴적 결과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저널리스트를 싸잡아 비난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이 강연자는 말한다. ‘존경할 만한 저널리스트’의 경우, 그들의 일은 뛰어난 학자의 재능이나 최소한 같은 수준의 재능을 요하며, 그들의 책임감은 학자의 책임감을 능가하고, 분별력도 대다수 사람들보다 크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돼먹지 못하거나 무가치한 저널리스트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놀라운 일은 이 모든 어려움에도 이 계층에 훌륭하고 아주 순수한 사람들이, 국외자들은 쉽게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놓고 정부와 언론 사이 긴장이 팽팽하다. 이 방안이 정말로 ‘선진화’ 방안이라면, ‘경멸받을 언론’에 대한 나쁜 기억이 아니라, ‘존경할 만한 언론’에 대한 기대와 요구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고명섭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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