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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저작권법은 나를 보호해 주는가 / 이영미

등록 2007-09-03 17:49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야!한국사회
나는 글쟁이다. 그러니 나에게 저작권이란 밥줄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과연 나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가?

얼마 전 나는 내 글 십수 편이 나도 모르게 대학생들 리포트 다운로드 받는 인터넷사이트에서 팔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부분은 비상업적 학술지에 실었던 논문이었고 당연히 원고료 없이 쓴 글인데, 그 글들이 저작권자인 나도 모르는 곳에서 편당 몇 천원씩에 팔리고 있다니 기가 막혔다. 게다가 부도덕한 범죄행위를 부추기는 사이트에서 팔리다니 참으로 불쾌했다.

정황은 이해할 만하다. 국내 학술지들의 상당수가, 콘텐츠 관련 업체와 계약을 맺고 학술지를 웹문서로 만들어 도서관 등에 판매하고 있다. 자신들의 학술지를 더 많은 연구자가 편하게 검색·이용하라고 하는 일인데, 업체는 도서관뿐 아니라 이런 부도덕한 상업적 사이트에까지 그 콘텐츠를 팔고 있는 것이다. 학회는 웹문서 제작 계약 과정에서 일일이 저자들에게 통고하지 않고 있으며, 콘텐츠 업계는 학회와 계약을 맺으면서 이런 상업적 사이트에까지 무제한 판매한다는 것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있다. 결국 연구자만 손해를 본 것이다.

신문·방송의 지적 재산 보호 태도도 허술하다. 기자나 다큐멘터리 연출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매우 길고 복잡한 내용의 자문을 구하지만, 대부분 자문료·인터뷰료를 주지 않는다. 기사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는 내 말은 단 한 줄 혹은 2분 가량의 코멘트로 처리되었을지 몰라도, 나는 기자나 작가·연출가에게 짧게는 30분, 길게는 두세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해주고 참고할 만한 내 글까지 소개해 주었다. 기사나 프로그램은 그 내용을 고스란히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긴 시간과 노동력을 투자하여 생산해낸 지적 산물을 그냥 쉽게 가져가 버린다.

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느냐고? 몇 푼 자문료를 요구하는 야박한 학자로 보이기 싫어서, 혹은 글 하나 때문에 그 많은 학회에 일일이 항의하기가 껄끄럽고 귀찮아서, 내남없이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얼마 전 출판사에서 내 책 <한국 대중가요사>가 공공기금의 지원을 받아 외국어로 번역되는 대상으로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왔다. 그런데 몇 주 후에, 이를 담당하는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황당한 전화가 왔다. 번역이 보류되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내 책에 수백 편의 노래 가사가 인용되어 있는데 음악저작권협회에 문의해 보니 그에 대해 모두 저작권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국외의 어느 출판사에서도 엄청난 저작권료를 지급하면서 이 책을 출판하지는 않을 것이니 번역을 보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에서는, 저작물의 전부 혹은 일부를 가져다 쓰면 모두 저작권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저작을 보고 듣는 것이 주목적이 아닌, 평론이나 학술논문에서의 인용은 통상적으로 저작권 허가 없이 행하고 있다. 그러나 법에서는 이런 경우를 예외로 두는 문구가 없다. 그러다 보니 문학과 달리 평론과 논문에 대한 고려가 적은 대신 저작권 보호 개념이 강한 대중음악이나 텔레비전 영상물 분야에서는 그냥 ‘법대로’를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법 무서운 줄을 아는 공공기관에서는, 음악·영상들을 인용하며 분석·설명하는 교육자료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그저 만만한 연구자에게 그 저작권료를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지적 저작물은 종이, 웹, 음성, 영상 등을 넘나들며 무한복제되는 시대가 되었는데, 법은 여전히 단순하다. 힘없고 법적 절차에 취약한 서생들은 어쩌란 말인가.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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