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논설위원
유레카
무리 속의 닭은 한 마리가 다쳐 피를 흘리게 되면 그것을 본 닭들이 흥분하는 성향이 있다. 옆에 있는 닭들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서로 눈을 쪼아 다치게 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다. 미국의 앤드루 잭슨 주니어는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양계업자들을 위해 닭머리에 씌우는 특수 안경을 개발해 1903년 특허 등록했다. 닭의 머리에 걸쳐 씌워 닭이 앞만 보도록 시야를 좁히고, 다른 닭의 공격에서 눈을 보호해주는 것이었다.
이 특허는 1930년대에 실용화돼서, 빨간색 렌즈를 끼운 닭안경을 생산하는 회사도 나왔다. 빨간색 렌즈는 다른 닭이 피 흘리는 것을 못 보게 하는 효과도 노린 것이었다. 오늘날 양계업자들은 닭머리에 안경을 씌우는 대신 닭을 한 마리씩 나눠 닭장에 가둬 기른다.
꿩도 닭과 비슷한 공격성을 보이는데, 날개가 퇴화하지 않아 한 마리씩 가둬 기르기가 어렵다. 그래서 꿩농장에서는 꿩한테도 한때 안경을 씌웠다. 요새는 어릴 때 뾰족한 부리 끝을 잘라내는 방법을 많이 쓴다.
사람도 무언가를 놓고 치열하게 서로 다툴 때는 닭이나 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은 모든 맹수 가운데 가장 가공할 만한 존재이며, 동족을 조직적으로 잡아먹는 유일한 맹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권을 꿈꾸는 이들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지난날 선거를 돌아보면, 우리나라의 선거는 집권세력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하고 누가 더 잘할 것인지는 그다지 따지지 않는다. 후보 평가도 과거 행적을 둘러싼 ‘네거티브 공방’으로 대체되곤 했다. 이번에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나라의 앞날을 놓고 벌이는 정책 공방을 유도할 수만 있다면, 닭안경 같은 특수장비를 씌워주고 싶을 정도다. 부리 끝을 자를 수는 없으니까.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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