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베트남과 한국 / 김종철

등록 2007-09-18 18:11

김종철 논설위원
김종철 논설위원
유레카
베트남 하노이 부근의 ‘응옥 호이’(玉回) 마을에는 ‘낌’(金)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청나라 군대를 따라 왔던 조선인들의 후예라고 주장하고 있다. 베트남 혁명 시기에 족보가 다 사라져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들의 주장은 신빙성이 높다. 18세기 말 레 왕조를 무너뜨린 떠이 썬 출신 삼형제의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의 팔기군 20만명이 출동했다. 청의 원정군에 포함됐던 ‘조선 팔기’ 병사 중 일부가 포로로 잡혀 정착했을 가능성이 있다.(최병욱, <동남아시아사>) 이보다 앞서 1604년부터 1606년까지 진주 사람 ‘조완벽’은 일본 무역선을 타고 베트남을 여러차례 방문했다. 정유재란 때 포로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현지 무역상에서 일했다.

기록상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귀화 베트남인은 12세기 초의 ‘이양곤’이다. 그는 베트남 최초의 장기 왕조인 ‘리 왕조’(1009~1225)의 왕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후계 문제로 조정이 혼란해지자 배를 타고 고려로 와서 정선 이씨의 시조가 됐다. 고려 무신정권 때 활약했던 ‘이의민’은 정선 이씨의 6대 손이다. 리 왕조가 망하자, 1226년 왕자 ‘이용상’은 조상의 제기를 배에 싣고 망명길에 올랐다. 그가 도착한 곳은 황해도 옹진군 화산이었다. 그는 당시 옹진에서 원나라 군대를 물리친 공으로 고려 고종으로부터 화산군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화산 이씨의 시조다.

유교 문화권인 베트남과 우리나라는 과거시험 전통이나 조상 제사 등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외국인과의 혼인 가운데 베트남 여성과 결혼이 점점 늘어나는 까닭도 이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베트남인 결혼 이주 여성은 1만131명이다. (사)유엔인권정책센터는 한국에 시집오는 베트남 여성들을 돕기 위해 사전에 한국 알기 교육을 벌이기로 했다. 한국인의 베트남 알기 교육도 급하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