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사극 천하’가 보여주는 정치관 / 이영미

등록 2007-09-21 17:50수정 2007-09-21 17:52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야!한국사회
텔레비전이 온통 사극이다. 주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주중에 무려 네 편의 사극이 방영되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게다가 초여름의 <한성별곡-정>까지 치면, 2007년은 ‘사극 천하(天下)’의 해임이 분명하다.

이런 현상은 우연인 측면도 크다. 한국방송은 몇 해 전부터 추진해온 북한과 합작 드라마 <사육신>을, 문화방송은 말도 탈도 많던 <태왕사신기>를 더 미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 속에 필연은 숨어 있는 법, 드라마의 트렌드에서 세상 사람들의 심사를 읽어내는 나에게 이 가을 사극은 매우 흥미로운 대상이다.

작년과 큰 차이는 시대다. <주몽>과 <대조영>과 <연개소문>이 맞붙었던 2005년과 2006년의 화두는 고구려였다. 조선왕조 중심의 사극에 지겨워하며 이전으로 눈을 돌려오다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반감을 발판으로 삼아 과감하게 고구려로 발을 떼어놓았다. 그런데 올가을 사극은 다시 조선조로 되돌아왔다. <대조영>과 <태왕사신기>는, 그 시절 기획 아이디어가 지금에야 발현된 경우이다. 물론 우리 국민의 대륙 향수나 판타지 장르에 대한 탐구가 단발적 관심은 아니므로 고구려나 상고사 소재는 앞으로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번 가을의 사극은 조선, 그것도 왕이 중심으로 돌아온 사극이다.

‘정치의 계절’에 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그저 우연일까? 설사 우연이라 하더라도, 대중들은 이들 드라마 속에서 올해 정치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투영하고 이는 작품으로 되비추어진다. 조선조는 사병도 호족도 없는 시대였고 사대부에 의한 중앙집권적 정치가 이루어졌다. 게다가 시청자가 가장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으며, ‘만주벌판 말 달리는’ 스펙터클이 필요 없는 시대이니 정치에 대한 섬세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시대이다. 뿐만 아니라 <대장금>이나 <황진이> 같은 전문직의 이야기에서 다시 왕으로 관심이 되돌아왔으니, 정치 이야기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한성별곡-정>부터 이번 가을의 사극까지 살펴보면, 이들 작품에 투영되는 대중의 정치관은 크게 두 가지인 듯하다. 하나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서로 음모를 벌이고 이전투구하며 죽고 죽이는 곳이라는 생각, 다른 하나는 이 복잡한 정치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실패해버린 개혁에 대한 아쉬움이다. 첫번째의 관점은 이제 거의 모든 사극이 다 지니고 있는 정치관이다. 예전처럼 충의나 효열이 통하는 세계가 아니다. 특히 작가 유동윤과 연출자 김재형 콤비가 다시 호흡을 맞춘 <왕과 나>는, 그들의 전작으로 보아 이런 정치관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그에 비해 정조를 소재로 한 두 편의 작품에서는 확실히 실패한 개혁에 대한 아쉬움을 읽어내게 된다. 이미 종방한 <한성별곡-정>에서는 이것이 매우 명확했고, 난세에 성군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다소 교과서적인 연출 의도를 밝힌 이병훈 연출의 <이산> 역시 정조의 죽음으로 조선조의 르네상스가 중단되었다는 엄연한 사실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개혁이 놓인 맥락은, 자칫하면 왕도 암살당할 정도로 무서운 정치고수들이 노니는 판이다. 수십 년 정치를 좌지우지한 신료들과, 내관·상궁 등 중간직 공무원들이 갓 보위에 오른 왕을 물 먹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왕은 이 벽을 넘어 백성과 손을 잡아야 마땅하나 결코 쉽지 않다.

답답한 조선조의 정치 속에서 2007년 대한민국의 시청자도 암중모색하고 있다.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특검 찬성’ 의원 겁박 권성동, ‘백골단 비호’ 김민전 1.

[사설] ‘특검 찬성’ 의원 겁박 권성동, ‘백골단 비호’ 김민전

우리는 ‘멍청함’과 싸워야 한다 [왜냐면] 2.

우리는 ‘멍청함’과 싸워야 한다 [왜냐면]

트럼프처럼 복귀하겠다는 윤석열의 망상 3.

트럼프처럼 복귀하겠다는 윤석열의 망상

[사설] 체포영장 거부하면서 구속영장 응한다는 윤의 궤변 4.

[사설] 체포영장 거부하면서 구속영장 응한다는 윤의 궤변

“체포 말고 구속” 윤석열 역제안의 이유 5.

“체포 말고 구속” 윤석열 역제안의 이유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