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책·지성팀장
유레카
1917년 4월4일 자정 직후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1870∼1924)을 실은 열차가 페트로그라드의 핀란드역에 도착했다. 레닌의 마음은 진즉부터 분노의 불길로 이글거렸다. 마중 나온 레프 카메네프에게 최초의 불똥이 떨어졌다. 볼셰비키 중앙위원회 멤버 대다수가 2월혁명 이후 임시정부 노선에 동조한 데 대한 분노였다. 망명지 스위스에서 독일을 거쳐 러시아로 향하는 ‘밀봉열차’ 안에서 레닌은 ‘4월 테제’를 작성했다.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즉각 사회주의혁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문건이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에게 오랫동안 진리처럼 여겨져온 ‘단계적 혁명론’, 곧 역사발전 법칙에 비추어 상황이 무르익는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명제를 일거에 휴지로 만드는 것이기도 했다. 제국주의 전쟁에 포위된 ‘엄혹한 국면’에서 제출된 과격한 주장에 거의 모든 볼셰비키 혁명가들이 반기를 들었다.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는 4월 테제를 “정신병자의 착란증”이라고 했고, 레닌의 아내조차 “레닌이 미친 것 같아 걱정”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이 국면에서 고군분투하는 혁명지도자의 처지를 두고 ‘레닌의 고독’이라고 명명한다. “이 시기에 레닌은 당에서 주류와 맞서 싸우며 기본적으로 혼자였다.” 레닌은 혁명을 역사법칙에 종속시키려는 사람들을 가리켜 ‘기회주의자’라고 규정하고 단기필마로 싸웠다.
여섯 달 후 볼셰비키는 임시정부를 전복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10월은 레닌이 주도한 그 혁명이 일어난 지 꼭 90년 되는 달이다. 지젝은 법칙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 혁명을 결단한 레닌이 옳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그가 일으킨 사회주의혁명이 결국 파산했는데도 그가 옳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런 의문 속에 레닌 혁명 연구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듯 보인다.
고명섭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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