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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그녀들이 돌아왔다 / 권수현

등록 2007-10-01 18:55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야!한국사회
<흡연 여성 잔혹사>라는 책에는 담배라는 기호품을 향유하기 위해 여성들이 치러야 했던 대가와 잔혹한 일상이 잘 그려져 있다. 한 인생을 징하게(!) 살아낸 중년의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간혹 웃음을 자아내는데 그 웃음은 서늘한 여운을 남긴다. 어디선가 날아올 모욕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 없이 ‘감히 여자가’ 공적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여자가 폭력을 당한다는 사실은 동일한 이유로 ‘모든’ 여자들이 폭력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모든 여자들은 ‘그런 여자’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일상적인 실천을 해야 한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만 하는 ‘비공식 흡연’ 혹은 가족들에게조차 자신의 흡연 사실을 숨겨야 하는 ‘몰래 흡연’은 흡연 여성들이 낙인을 피하고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선택한 전략 중 하나였다. 흡연 여성이 불특정 다수로부터 테러와 멸시를 당해도 마땅하다는 생각은 흡연 여성을 낙인찍힌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흡연 여성에게 부가된 낙인은 여성 일반에 대한 잠재적 낙인이 된다. 그 누구든 담배를 피우는 즉시 누군가가 겪은 폭력이 자신의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규칙에 따르는 한 ‘단지 그대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폭력과 멸시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그 규칙이 정해놓은 경계를 넘어서게 되면 당장 낙인이 찍히고 ‘공공의 적’이 된다.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폭력이 행해지는 상황은 “과연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온전한 시민권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흡연과 같은 ‘개인적 선택’을 포함한 사생활의 문제가 공공연한 폭력의 명분이 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자행되어 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언론이 있었다. 개인의 사생활이 담긴 비디오가 인터넷으로 공개되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모욕을 감당해야 했고, 자신 역시 피해자임에도 언론이라는 공적 공간으로 불려나와 자신의 ‘죄’를 자백해야 했고, 머리를 조아리며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며 용서를 구했던 그녀들. 그것은 그들이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정숙한 여성’의 경계를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리돌림을 당해야 했던 그녀들은 아예 텔레비전에서 사라지거나, 설령 그녀들이 공적 활동 공간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러한 테러가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되는 이유는 동일한 행위를 평가하는 잣대가 남녀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이중 기준’ 때문이다. ‘변양균-신정아 스캔들’은 요사스런 꽃뱀(신정아)에게 걸려 로맨스에 빠진 불쌍한 남자(변양균)의 이야기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문화일보>의 ‘신정아 알몸사진 테러’는 우리 사회의 이러한 문화적 분위기에 편승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이 사건이 ‘아무개양 비디오 사건’과 다른 점은, <문화일보>가 “알몸사진은 신정아씨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로비의 ‘가능성’에 대한 증거”라는 황당한 논리를 폈다는 것이다. ‘가능성’만으로도 일체의 시민권을 박탈해도 좋다는 논리는 모든 여성을 잠재적 낙인이 가능한 대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여성 일반에 대한 폭력이다. 동시에 이는 한 사회의 규범적 질서에 의해 만들어진 ‘성적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공적 테러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모든 인간에 대한 폭력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문화일보> 쪽에서는 별반 사과나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이 ‘당해도 싼 여자’라서 그랬다는 변명은 성폭력범만 하는 게 아니다. 한 인간에게 부여된 일체의 시민권을 부정하는 폭력적 논리를 ‘알 권리’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하는 언론이야말로 공공의 적이 아니겠는가?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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