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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농민공동체의 붕괴와 민주주의의 위기 / 이명원

등록 2007-10-03 17:57

이명원/문학평론가
이명원/문학평론가
야한국사회
최근에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 교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근원적 민주주의와 농민공동체’라는 주제였는데, 민주주의의 위기와 농촌 붕괴를 연관해 거론하는 주장이 특히 흥미로웠다. 그는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모델로 흔히 거론되는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가 사실은 농민공동체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환기시켰다. 투표권을 갖고 있는 정치적 주체로서의 아테네 시민의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농민이었다는 것이다.

이들 아테네 시민들은 농업의 기본특성상 상호부조와 협업으로 경제생활을 유지해 나갔는데, 이는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폴리스의 시민들은 오늘날과 같은 ‘대의제’가 아닌 ‘직접 민주주의’를 선택했는데, 지도자는 철저히 우연성에 좌우되는 ‘제비뽑기’를 통해 선출했고, 이런 과정이 권력독점과 엽관정치의 폐해를 막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안전장치로 도편추방제도 있었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두레공동체’ 정도가 될라나.

농촌 붕괴를 도시인들은 우습게 보지만, 오랜 역사 속에서 근원적 민주주의의 오랜 영감을 제공해 온 것은 농촌이었다. 물론 세월이 지나면서, 특히 공업화의 비전이 전지구적으로 팽창해 국가권력과 시장권력이 비대해지고, 이에 따라 전통적인 농촌의 자치와 생산 공동체가 거의 완벽하게 파괴되고 있지만, 상호부조와 협업, 그리고 자치에 의거한 농민공동체의 민주주의처럼 인류사적으로 볼 때 근원적이면서도 장구한 역사를 가진 것도 없다.

농민공동체 파괴는, 우리 자신이 경제동물이 되어 주판알을 튀기는 것과는 별도로,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근원적 가치인 상호부조와 협업, 그리고 자치 정신에 대한 경멸을 낳았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공업화에 의거한 절대자본주의적 지구화에 따른 결과로, 지구인의 운명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끔찍스러운 파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공업화의 동력인 화석연료는 수십 년 안에 바닥날 것이 분명해 보이고, 화석연료의 과잉생산과 소비에 따른 오존층의 파괴는 이미 지구 생태계를 전면적으로 교란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지구의 허파 구실을 하던 농지가 도시계획에 따라 사라지고, 숨쉴 수 없는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이 지구를 뒤덮으면서, 기후의 평형상태가 깨져 지구적 식량생산의 남북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

최근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했다는 보도와 함께, 식량 자급도가 20%에 불과한 한국의 곡물무역의 손실액이 반도체 수출에 따른 무역이익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것은 심각한 징후다. 그런데도 경제동물이 되어버린 한국인들, 그리고 그들의 정치인들은 한국농업을 파산 상태로 이끌면서 경제발전을 추진하겠다, 농지를 허물어 새도시를 만들겠다, 골프장을 건설하겠다, 대운하를 건설하겠다며 철없는 정책과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논리가 농민공동체의 붕괴를 당연시하고 있지만, 그것은 다만 경제적인 문제로만 축소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를 지탱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근원적 가치와 상호부조 정신, 사람과 자연 모두를 공경의 자세로 대하는 인격적인 관계의 소멸을 부추긴다. 다른 한편에서 그것은 공동체의 윤리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격하시켜, 오늘 우리들이 목격하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낮은 상태로 하강시킨다.

농민공동체의 붕괴는 장구한 시간 속에서 지속돼 온 근원적 민주주의와 자치정신의 붕괴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다. 오늘의 민주주의에 대한 사유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한 때다.

이명원/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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