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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착한 로스쿨을 위해 / 박용현

등록 2007-10-04 17:41

박용현/24시팀장
박용현/24시팀장
한겨레프리즘
헤더는 수녀들과 함께 파푸아뉴기니에서 몇년 동안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르노어는 팔레스타인에 한동안 머물며 평화운동을 펼쳤다. 트리스탄은 노조 활동가였다. 제프는 아프리카 지원활동을 몇 차례씩 다녀온 ‘아프리카광’이다. 미국의 한 로스쿨에서는 다양한 삶의 자취를 지닌 친구들을 뜻밖에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로스쿨 도입을 앞두고 시끄럽게 들려오는 말들은 총정원을 둘러싼 밥그릇 싸움과 대학들의 로또식 유치 경쟁, 교수 빼가기 전쟁 따위가 대부분이다. 법조인력 양성 제도의 혁명적 변화를 준비하는 것치고는 너무 앙상한 논란 속에서, 정작 중요한 문제는 밀리고 있는 느낌이다.

우선, 어떤 학생을 뽑을 것인가. 2009년 출범을 앞두고도 선발 방식에 대해 명확한 상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학생 구성의 다양성 확보 문제는 더더욱 관심 밖이다. 고교 졸업부터 법전만 파고든 책상물림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적 배경과 사회 경험,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법조계로 진출하는 것이야말로 로스쿨 제도에 거는 사람들의 기대다. 예를 들어, 전공 공부에 충실한 대학생활을 마친 뒤 시민단체나 복지기관에 들어가 일하다가 ‘필요한 이들에게 법률 서비스가 너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이가 있다면, 고교 때부터 대학생활까지 오로지 로스쿨만 목표로 뛰어온 ‘입시 기계’들을 제치고 너끈히 로스쿨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서울대에서는 예의 그 ‘변별력’을 내세워, 로스쿨 전형에서 외국어 능력을 중시하겠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또다른 수능이나 변형된 고시처럼 점수로 줄을 세우려는 발상밖에 못하는 대학이 로스쿨을 갖게 되는 건 불행이다.

다양한 학생을 뽑은 뒤에는 그들이 원하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어린이의 권리, 아동학대, 장애인의 권리, 표현의 자유, 성폭력, 인권과 환경, 난민 보호, 국제적 인권 보호, 사회경제적 권리의 사법적 실현, 법과 공공보건, 비영리기구와 자선, 빈곤법, 성 평등, 사형제, 인종과 정의, 동성애와 법, 여성의 인권 …. 하버드 로스쿨에 개설된 과목의 일부다. 물론 돈벌이와 직결된 과목도 많지만, 인권의 보루이자 공익의 대변자인 법조인을 키워내는 곳에 걸맞은 과목을 넉넉히 갖추고 있다.

우리 법조계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무죄 판결이나 위헌 결정으로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국방부보다 못한 인권 의식을 보여준 바 있다. 법조계 전반의 인권 의식 향상을 위해서도 로스쿨에는 이런 과목들이 많이 개설돼야 할 것 같다.

미국에선 로스쿨의 커리큘럼만큼이나 졸업생의 활동도 다양하다. 워싱턴에 있는 고용정의센터 변호사들은 건설노동자, 청소부, 상점 직원 등 노조 없는 노동자들을 위해 임금, 부당해고, 전과를 이유로 한 고용 거부, 직장 성희롱 등 각종 부당 처우에 대한 법률 서비스를 저렴하게 또는 무료로 제공한다. 빈민구호단체인 ‘도시를 위한 빵’에서도 전업 변호사들이 일한다. 서민과 빈곤층이 부딪치는 법률 문제를 다루는 크고 작은 공익 변호사단체가 수두룩하다. 복지기관이나 법원 등에서 법률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발견하면 이런 단체에 소개시켜주고, 전화번호부에는 911과 함께 이런 단체의 연락처가 소개되고 있다. 심지어 노숙인 문제만 전업으로 다루는 변호사들이 모인 ‘홈리스를 위한 법률 클리닉’도 있다. 이런 공익적 활동을 하는 변호사들에게는 로스쿨 학비 대출금의 상환을 면제해주기도 한다.

앞으로 로스쿨 논란이 학생 모집과 교육, 사회에 진출할 때 다양성 확보 문제로 옮겨가기를 기대한다. 총정원 확대는 그 당연한 전제다.

박용현/24시팀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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