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칼럼
그 많던 비리 의혹은 어디로 갔을까. 변양균-신정아씨 사건과 관련해 한국 언론은 지난 두 달 남짓 무수한 의혹을 쏟아냈다. 대통령 부인, 국무총리, 실세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권력의 정상부가 의혹의 대상이었다. 청와대·기획예산처·행정자치부·문화관광부 등의 정부 부처도 미심쩍었다. 검찰이 대검 중수부까지 동원해 수사에 나선 것은 당연했다.
한데, 결과는 초라하다. 태산이 무너지는 듯했는데, 튀어나온 건 고작 쥐 두 마리뿐이다. 권력형 비리는 간데 없고, 구질구질한 개인 비리뿐이다. 검찰이 권력 눈치를 보느라고 할 일을 못했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남발한 선정적인 보도가 께름칙한 언론은 그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참여정부 초기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은 물론, 그의 형제와 최측근들을 탈탈 털었던 검찰을 모욕하는 일일 게다. 게다가 지금은 정권 말기다. 대선을 앞둔 여권은 지리멸렬이다.
예전 같으면 적당히 눙치고 넘어가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 같지 않다. 막무가내로 던진 돌에, 더는 망가질 게 없을 정도로 상처받은 피해자들 때문이다. 한국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 산하 2300여 사찰들이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부터 산중 깊은 산문에까지 ‘<조선일보> 구독 거부’를 알리는 펼침막을 내건 것은 상징적이다. 조계종 종단은 다른 매체에 대해서도 정정보도 등 명예회복을 위한 법적 조처를 밟겠다고 했다. 권력형 비리의 공모자로 지목된 불교계로서야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이 사건에선 문제의 피의자들도 벼른다. 알몸 사진이 버젓이 실리고, 사진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으니 당연한 노릇이다. 불쏘시개를 계속 제공해 온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는 꼬리를 바짝 내렸다. 다른 신문들도 퇴로 마련에 바쁘다. 언론은 제가 판 구덩이에 제가 걸려든 꼴이 됐다. 권력의 추악성이 아니라, 자신의 추접한 속성, 곧 선정성과 천박성, 상업성과 정파성, 그리고 권력의지만 드러낸 것이다.
민주화 이후 20년, 언론 자유의 신장은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기간 주류 매체의 영향력은 급속히 추락했다. 신문은 더 심했다. 독자는 줄어들고 수익도 급감했다. 언론계는 그 원인을 시장 위기 탓으로 돌렸다. 영상 매체 및 인터넷 매체의 등장과 급격한 성장은 과거 신문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여론 시장을 조각조각 분할해 버렸다는 것이다.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원인은 다른 데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이런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신문 산업이 쇠락하는 게 아니라 미디어의 주인공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비결은 신문만이 깊이 있고, 신뢰할 만한 종합적인 정보를 고객에 맞춰 제공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리의 경우가 아니다. 외국 정론지가 분석대상이었다. 우리 독자들은 이미 인터넷(48.3%) 텔레비전(43%) 신문(7%) 차례로 정보를 얻는다. 신문은 외면당한다.
언론재단의 조사 결과로는, 신문의 신뢰도는 1990년대부터 떨어졌고, 94년엔 텔레비전에도 역전당했다. 2004년 조사에서 ‘신뢰한다’는 독자는 19.5%, ‘공정하다’고 응답한 독자는 12%에 불과했다. 독자들이 보기에 우리 신문은 정파적이며 자사 이익을 앞세우고, 돈과 힘있는 집단의 입장을 먼저 대변한다. 정확성·객관성·공정성·공익성·정치적 중립성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중간 이하의 평가를 받았다. 최근 ‘신-변’ 사건 보도를 보면서 새삼 절감한다.
신문들, 안녕하신가? 아니다. 기자실 폐쇄 때문인가? 아니다. 자초한 신뢰의 위기 때문이다.
곽병찬 논설위원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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