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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동질화 조급증과 문화 다양성 / 이영미

등록 2007-10-15 17:55수정 2007-10-15 18:04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야!한국사회
남북 정상회담이 화려하게 끝난 직후 맞은 한글날에 언론들은 또 예상한 바와 같이, 남북 언어가 우려할 정도로 이질화되었다는 기사를 내놓았다. 내가 ‘예상한 바와 같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기사들이 한글날이나 남북교류 같은 시기에, 마치 명절음식의 고정된 식단처럼 때가 되면 내놓는 고정 레퍼토리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고정 레퍼토리 같은 기사가 보여주는 관점과 현상 판단에 그리 동의할 수 없다. 남북 문화교류가 좀더 진전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도가 선하며 상식적이기는 하나, 그리 정확하고 올바르다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제주도의 교사단체에서 주최하는 자리에서 남북 문화교류와 관련된 특강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이 질문이 나왔다. 분단 반세기 동안 심화된 남북 언어의 이질성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내 대답은 이러했다. “어느 정도의 이질화는 당연한 것이며, 교류와 접촉이 늘어나면 자연히 동질화될 것입니다. 사실 남한의 말들도 모두 동질적이지 않은데도 별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저에게는 북한말보다 제주도 방언이 훨씬 어렵습니다. 제주에서 이런 질문을 받으니 참 흥미롭네요.” 제주어와 표준어의 이중언어 교육을 받는다고 할 만한 제주도민들이 하는 이런 질문은, 언론 등에 의해 학습된 질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 오징어나 낙지 같은 말의 의미가 달라 교역에 지장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그저 사소한 일화로 지나가도 될 문제다. 남한에서도, 전남 토박이 노인들은 고구마를 감자라고 하고(제주도에서는 ‘감저’), 서울에서 감자라고 하는 것을 하지감자라고 하지 않는가. 몇 가지 어휘가 다르다고 남북이 통역을 두어야 하는 수준은 아닌 것이다.

이는 다른 문화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북한 문화를 접하면서 느끼는 심각한 이질감은, 동질성에 대한 욕구가 지나치게 커서 생기는 현상이다. 우리는 반세기 갈라진 만큼 이질화되었고, 그 이전 수천 년을 함께 살아온 만큼 엄청나게 큰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남북은, 그 이질화된 것을 빨리 극복하여 동질성을 회복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나는 반대다. 문화의 동질성 회복은 억지로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며, 자연스럽게 시간이 해결해줄 사안이다.

그뿐만 아니라 과연 남북문화 동질화가 정말 시급히 필요한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문화란 지역·계층·세대·성에 따라 이질적이기 마련이다. 이질성은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오류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세대 사이, 종족 사이에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다고 그것을 꼭 하나로 통일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단지 그들이 서로의 문화에 대해 너그러이 인정하는 것, 더 나아가 다른 문화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곧 지금 남북 문화교류에서 필요한 사고는, 동질성 회복이 아니라,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아가 다양한 문화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어쩌면 앞으로, 동질성에 대한 지나친 욕구가 문화교류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지나친 동질성 욕구는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북한이 보여주는 작은 이질성도 못 견뎌하며 비웃거나 비난하지 않는가. 게다가 동질성에 대한 욕구는 북한도 남한 못지 않으니, 그쪽에도 문화 다양성 태도를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남과 북은 참 동질적이란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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