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 논설위원
유레카
언젠가 한 동네를 갔다가 섬뜩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처음 찾았는데, 거리의 모습 하나하나가 기억 속에 생생히 잡혔기 때문이다. 아이 일로 한 상담사를 마주한 적이 있는데, 어투에 이목구비까지 너무나 낯익었다. 도무지 마주칠 일이 없는 다른 삶의 경로를 걸어온 사람인데,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 같은 느낌을 받아 순간 매우 당혹했다.
열에 일곱이 적어도 생애에 한 차례 이상 이런 일을 겪는다고 한다. 기시감이다. ‘이미(deja) 보았다(vu)’란 뜻의 프랑스어, 데자뷔가 어원이다. ‘전에도 똑같은 상황을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을 말하는데,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에서도 이런 느낌이 생기기도 한다. ‘낯섦, 기묘함, 이상함’ 등의 느낌을 동반하는 게 특징이다. 꿈과 무관하지 않다거나 ‘윤회의 증거’라고 풀이하는 이도 있다.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에밀 보이라크가 20세기 초 <정신과학의 미래>란 자신의 책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현대과학은 이를 두고 ‘지각과 기억의 연결고리를 담당하는 뇌 신경회로가 엉킨 결과’로 본다. 신경세포가 정보를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라는 해석이다. 일종의 착각이다.
사회적 이슈나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서도 기시감이 있는 것 같다. 예컨대 직업·소득·교육 수준에 따른 건강격차, 즉 건강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면, 많은 이들이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면서도 ‘이미 안다’는 반응을 보인다. 불평등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생긴 기시감이며 착각이다. 2007년 대선 과정을 두고서도 기시감이란 말로 빗대어 말하는 이들도 있다. 예전에 많이 봐 왔던 모습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거리나 사람에 대한 기시감은 고개를 갸웃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회적 이슈나 현상에 대한 기시감은 객관적 판단을 저해할 수 있다. 이럴 때의 기시감은 혹 통념의 포로가 된 우리의 나태한 기억은 아닐는지….
이창곤 논설위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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