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훈/공감 변호사
야!한국사회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늘어나면서 사법연수원 수료 후 인권단체, 노동조합, 환경·시민단체 등에 상근자로 진출하는 변호사들이 생겨났다. 김두식 교수는 다양한 진로를 개척한 이들에게 ‘똥개 변호사’라는 향기로운 명칭과 ‘법조의 희망’이라는 과도한 영예를 부여했다. 덕분에 수료 후 비영리단체에서 변호사로서 일하는 나도 그 ‘향기’와 ‘영예’를 과분하게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합격자 수가 1000명으로 늘어난 이후에도 연수원 수료자들의 진로 선택의 다양성은 더 확장되지 못했다. 여러가지 진단이 있을 수 있지만, 핵심 원인은 변호사가 여전히 소수의 ‘특권 집단’이라는 점에 있다. 특권적 지위의 기대 가능성은 다양한 ‘출구’에 대한 개인적 결단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물론 그 특권은 법조 ‘입구’에 사법시험이라는 높은 제도적 문턱을 설치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이제 사법시험 합격자 수의 증가를 넘어서 로스쿨이라는 새로운 법률가 양성제도가 도입된다. 그리고 이 문제를 바라보는 개인적 관심은, 로스쿨 제도를 통해 진로의 다양성과 함께 출신 배경과 이력이 다양한 진정한 의미에서 ‘똥개 변호사’, ‘거리의 변호사’들을 길러낼 수 있을 것이냐에 있다. 새로운 제도의 핵심은,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을 선택하기 이전에 변호사 ‘조영래’와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나아가 ‘전태일’ 스스로 ‘조영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확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가능성이 보장되는 한에서만 나는 로스쿨 제도를 지지한다.
그러나 최근의 로스쿨 논의는 총 입학정원 문제에 관한 대립으로만 집중되었다. 현상적으로는 ‘적정 변호사 수’에 대한 대립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이른바 ‘법조’의 이해와 ‘대학’의 사활이 부딪히는 ‘구린’ 전쟁이 있었다. 일부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논의가 근본적으로 왜곡된 것은 ‘적정 변호사 수’를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는 현행 로스쿨 제도의 ‘프레임’ 그 자체에 원인이 있다. 변호사의 적정 수는 수요-공급의 결과로 확인되어야 할 것이지, 국가가 합격자 수나 총정원을 설정함으로써 강제할 성질이 아니다. 더욱이 로스쿨 제도에서는 법률가 양성의 주체가 국가에서 시민사회로 전환된다. 국가가 정원 통제를 통해 결과적으로 변호사의 특권을 보존하는 방식은 더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이유의 하나는 ‘법률가와 거리’가 멀기 때문일 수 있다. 특권적 지위의 보존은 접근성을 생명으로 하는 사법 민주화에 제도적 장애가 될 뿐이다.
‘변호사 3000명 배출’이라는 의제의 선명성 때문에 ‘사법 민주화’라는 원칙적 가치의 중심을 놓친 대학·시민사회 쪽의 ‘프레임 착오’에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려고 그러한 프레임 자체를 기획한 것은 ‘법조’였다. 이제라도 로스쿨 논의의 프레임을 법률가의 이력과 진출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로스쿨 교육의 ‘공익성’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이냐에 두어야 한다. 전문성과 경쟁력 강화는 ‘다양성’이 확보되는 기초 위에서, 그 다양한 경험과 관점, 능력을 전문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의사·건축가는 물론이고, 노동자와 그 자녀가 법률가가 되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어떻게 확보할지를 고민하여야 한다. 시인이 법률가가 되어 법의 언어를 풍부히 하고, 영화 스태프가 변호사가 되어 현장의 불합리를 개선하는 그런 로스쿨을 바란다. 로스쿨이 사회의 다양성을 담는 그릇이 될 때, 법도 새로운 정의의 각도를 확보하고 빛날 수 있다고 믿는다.
정정훈/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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