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정/미술평론가
야!한국사회
‘항간에 떠도는 결별 소문에 경악하며, 서로 바빠 자주 못 보는 것일 뿐이라 해명했다/ 잉꼬처럼 다정했던 그들이 헤어지다니 믿을 수가 없다./ 더는 연인 사이가 아니지만 서로 염려하고 즐거운 일에 기뻐하는 관계를 유지할 거라고 측근은 전했다’
이는 연예인 결별 및 파경을 전후로 ‘결별 직전 당사자 변명/ 결별 직후 팬들 반응/ 결별 직후 당사자 입장’을 황색저널의 보도 양태대로 사건 발생순으로 배열해 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나같은 속물의 두뇌로 재구성하면 다음 같은 해석이 나온다. ‘이제 만나는 게 지겨울 때도 됐지. 어쩜 섹스도 예전 같지 않을걸?/ 뭐가 믿기질 않아? 예견된 수순 아니었나?/ 상호 배려하는 연출력이 돋보여! 차제의 활동에 지장이 가면 곤란하니 바보 같은 대중을 우롱할밖에’
뉴스란 자고로 전달하려는 팩트의 진정성으로 가치와 권위를 보장받는다. 이 불변의 공리를 흔드는 단 하나의 예외가 연예계 소식통을 자부하는 황색뉴스 아닐지. 일테면 왜곡 없는 사실 전달보다 뉴스의 소비자와 생산자가 담합한 결과, 듣기에 좋게 진실을 윤색과 첨삭해 생존력을 키우는 것이, 이 허구적 뉴스의 생산 체계다.
중견 탤런트 옥소리 박철, 26년 잉꼬부부 선우은숙 이영하의 파경이 근래 화제다. 그 발단과 배경은 각기 달라서, 옥소리 박철 커플은 송사까지 벌일 기세다. 그렇지만 두 사건에 공통점이 있다. 이혼 선언과 더불어 기자회견을 자청한 쪽이 여성이고, 한입으로 “잉꼬부부는 연출일 뿐이다”라는(하나도 놀라울 게 없는!) 충격 선언을 했고, 팬들의 경악과 안타까움이 연이어 뒤따랐다는 것. 연예계 명사의 털털한 품성과 사소한 실수에 풋풋한 인간미를 느껴 감동받던 팬들의 결집과 지지조차, 이들의 진정 인간적 면모일 연인의 본질에서만큼은 어울리지 않게도 엄격한 태도를 보인다. 남녀 간 연애 감정이 생물학적으로 3년간 유효하다는 연구보고에 자신들의 경험을 반추하며 수긍하다가도, 연예인 커플은 이 자연법칙까지 거슬러야 한다는 식이다. 강요에 가까운 이런 군중심리는 반대 의견을 무력화할 대한민국적 답안도 갖추고 있으니, 연예인은 만인의 모범인 공인이라는 것.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최근 갈라선 세실리아가 이혼 사유로 “퍼스트 레이디는 내게 맞는 자리가 아니었다”고 답했을 때, 그리고 프랑스 국민 9할이 “대통령 이혼은 사생활일 뿐”이란 설문 결과를 내놓았을 때, 과연 유럽은 ‘쿨’ 하구나라며 탄성을 내지르다가도, 국내의 동일한 실정에서만큼은 엄격한 기준을 요구한다. 그건 문화적 차이라고 우길 참인 게다.
연애관을 둘러싼 이런 허구적 이중성이 침윤된 경위는 뭘까? 혹 일일연속극이 생산하는 연애 판타지와 결혼 이데올로기의 주입교육에 가까운 수용 결과는 아니었을까? 연령대가 비슷한 이성 커플, 결혼에 올인하는 극의 마침표. 이런 판에 박힌 연속극은 결혼 직후 두 남녀의 판타지가 산산조각 나는 ‘일상적’ 현상만큼은 한사코 소재로 삼지 않는다. 이 얼마나 비현실적 성교육 교재인가? 국제적 기준 탓인지, 진보 보수 막론하고 여성 대통령 출연을 시대적 추세로 간주하나, 이보다 성별과 무관한 독신 대통령, 동거인 대통령에 대한 정서적 수용이 더 어울리는 시대가 아닐까.
국가 지도자 내외를 정점으로, 정례화된 숱한 부부동반 모임도 폐습 중 하나다. 근대 연구의 성과 중 신여성을 둘러싼 논의를 따라가 보면, 1920년대 무렵 자유연애가 기정사실화되어, “내 몸이 제일 소중”하다는 나혜석의 30년경 진술이 유의미하게 소개되는데, 막상 2007년 경직된 여론과 직면하면, 그런 파격적 연구 결과란 흔히 말하듯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든다.
반이정/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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