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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07대선, ‘이회창 칫솔모’ 재고품 다시 출시

등록 2007-11-07 18:00수정 2007-11-08 12:03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나라살림가족살림] 마케팅 관점서 보는 정치

‘강한 모 부드럽게 한’ 명박표 독과점 틈새 노려

품질 위주 경쟁서 색깔 선택 보태져 판도 ‘출렁’
편의점에 칫솔을 사러 갔다. 진열대에는 아주 강한 모를 가진 칫솔부터 아주 부드러운 모 칫솔까지 여러 가지 상품이 놓여 있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진열대 가운데쯤으로 손을 뻗쳤다.

통상 시장에서 가장 확보하기 어려우면서, 가장 빼앗기기 쉬우면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게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는 나 같은 다수 중간층 소비자다. 이럴 때 ‘강한 모’ 칫솔 생산업체는 영리한 경영전략을 펼쳐 볼 수 있다. 칫솔 모를 조금씩 부드럽게 바꾸면서 중간층 소비자를 공략하기 시작하되, ‘부드러운 모’ 칫솔보다는 강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원래부터 강한 모를 원하던 소비자층은 그대로 잡아 두기 위해서다.

2007년 대선 시장에 등장한 ‘이명박’이라는 상품은 바로 이 ‘강한 모’ 칫솔의 ‘부드러운 포지셔닝’ 전략을 채택했다. 역대 어느 보수진영 후보보다도 온건하고 중도적인 대북 정책을 내놓으며 ‘중도 실용주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정동영’ ‘문국현’ 같은 범여권 상품들은 대응 전략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오른쪽으로 움직여 정면대응을 하자니 더 왼쪽에 있는 ‘권영길’이라는 상품에게 빼앗길 소비자가 눈에 보였다. 왼쪽으로 움직이면, 중간층을 영영 빼앗길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에 ‘이명박’이라는 상품은 누구도 넘보지 못할 시장 주도권을 확보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틈새가 생겼다. 시장에는 원래부터 아주 강한 모 칫솔을 사용하고 싶어하는 소비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가장 센 모를 가진 상품을 선택하고 있지만,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한 상태다.

세번째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7일 오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뒤 걸어나오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왼쪽)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7일 새벽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집을 방문해 이 전 총재의 부재 여부를 확인하는 동안 기다리고 있다. 이 후보는 결국 편지만 남기고 돌아갔다.  헤럴드경제 제공
세번째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7일 오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뒤 걸어나오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왼쪽)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7일 새벽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집을 방문해 이 전 총재의 부재 여부를 확인하는 동안 기다리고 있다. 이 후보는 결국 편지만 남기고 돌아갔다. 헤럴드경제 제공

‘이회창’이라는 신상품은 그 틈새를 포착해 시장에 진입했다. 비어 있는 ‘아주 강한 모’ 포지셔닝을 선택해 치고 들어온 것이다. 자신에게 아주 적합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가깝다는 이유 때문에 ‘이명박’이라는 상품을 선택하던 소비자들은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게 출마선언 전부터 지지율 20%를 넘기는 저력을 보여준 ‘이회창 현상’의 배경이다.

2007년 대선 시장에 진입한 ‘이회창’이라는 신상품이 가진 파괴력은 사실 현재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치 소비자들의 구매결정 기준은 ‘경제’나 ‘능력’이었다. 이전 대선 시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의 40%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던 것은 그래서다. ‘이념’은 아예 소비자의 선택 기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회창’이라는 신상품은 ‘이념’이라는 선택 기준을 들고 나왔다. 이 기준에 따라, 다른 모든 상품의 재포지셔닝이 일어나면서 시장 점유율이 요동칠 수 있는 상황이다. 칫솔 시장으로 따지면, 지금까지 소비자들의 선택 기준은 ‘품질’이었다. 그러나 이제 ‘색깔’이라는 새로운 선택 기준이 생겼다. 지금까지 소비자들 마음속에는 강한 칫솔과 부드러운 칫솔이 있었지만, 이제는 빨간 칫솔과 파란 칫솔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생긴 것이다.

‘이회창’이 든 ‘파란 칫솔’의 깃발 아래 20%의 소비자가 모였다. ‘이명박’은 이제 칫솔의 색깔을 결정해야 하고, 그를 선호하던 50%의 소비자도 색깔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됐다.

마케팅 이론의 대가인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필립 코틀러 교수는 말했다. “정치적 경쟁을 관찰해 보면, 후보들이 마치 비누처럼 마케팅되고 팔려나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케팅 관점에서 볼 때 대선 시장의 의사결정 판도는 5년 전, 1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소비자 마음속의 지도가 새로 그려지고 있다.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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