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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차별금지법(안)의 죽음 / 정정훈

등록 2007-11-07 18:08수정 2007-11-07 19:39

정정훈/변호사
정정훈/변호사
야!한국사회
파시즘이라는 광기의 시대에 히틀러와 나치는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규정하고, 분홍색 삼각형의 표식을 달아 강제수용소에 수감했다. 강제수용소에서는 동성애자 ‘치료’를 위해 이성과의 성행위를 강요하고, ‘근절’을 위한 거세를 시도했다고 한다.

그 시대의 광기는 지나갔다. 그러나 그 광기를 지탱했던 인식은 현실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10월2일 법무부가 ‘성적 지향’ 항목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하자 ‘동성애 차별금지법안 저지 의회선교연합’이라는 일부 기독교 단체 연합은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규정하고, ‘동성애 확산을 조장하는 차별금지조항을 삭제하라’는 성명을 내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리고 법무부는 입법예고 절차에서 제시된 이러한 의견들을 받아들여 성적 지향을 비롯하여 학력·병력·출신국가·언어· 가족형태 등의 7개 차별금지 사유를 삭제한 법안을 내부적으로 확정했다고 한다.

‘믿음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며 지하철에서, 광장에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죄인’으로 규정하던 오만함은 몇몇 개인들의 문제만이 아닌 모양이다. 이제 기독교는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낙인찍으며, ‘신의 이름’으로 현실의 차별을 합리화한다. 그들은 동성애를 ‘윤리도덕’의 차원에서도 단죄하지만, 율법의 관점에서 규정된 그들의 윤리는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결국 차별금지의 원칙은 ‘윤리’로 명분화한 ‘율법’의 요구에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선교연합’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동성애를 끊고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교육이 필요한데, 차별금지법이 실행되면 그러한 교육이 금지되므로 가장 큰 문제다. 그래서 “동성애를 정상으로 인정하려는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도록, 동성애는 하나님이 금지한 죄악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변한다.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금지가 필요한 분명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공공영역, 특히 교육의 영역에서 ‘종교’나 ‘도덕’의 관점으로 타인의 삶의 방식을 일방적으로 ‘죄악’으로 매도하고, 단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현실에 ‘당신들의 천국’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 헌법의 원칙이요, 차별금지의 정신이다. ‘동성애를 끊고 새 삶을’이라는 부당한 종교의 인식이 ‘교육’과 ‘회개’를 명분으로 가하는 현실의 차별과 고통을 방치할 수는 없다. 세속(사회)의 법이 윤리로 명분화한 ‘율법’의 일방적 질주를 막아야 하는 이유다.

교육 문제 이외에 ‘선교연합’이 차별금지법(안)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부분들은 모두 악의적인 흑색선전에 가깝다. 그들은 법이 실행되면 표현의 자유가 봉쇄되고, 형사처벌이 남용되며, 당장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듯이 법의 효과를 침소봉대하여 부당한 우려를 만들어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더라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훼손될 수는 없을 것이고, 차별 진정에 대하여 보복조치로서 이루어지는 행위에 대해서만 형사처벌이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동성결혼의 제도화 문제는 차별금지법의 입법과는 다른 차원의 합의를 요구하는 문제다.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의 금지라는 헌법적 평등에 예외가 있을 수는 없다. 법무부는 7개의 사유를 삭제함으로써 차별금지의 근본정신을 법안에서 도려낸 것이고, 법안은 그 생명력을 잃었다. 법(안)이 이렇게 확정되어 국회를 통과한다면, 우리 모두는 더 이상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

정정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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