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현/여성민우회 편집위원
야!한국사회
11일 열린 ‘범국민 행동의 날’, 나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정부는 처음부터 ‘원천봉쇄’를 다짐했고, 경찰은 전국 주요 도로와 고속도로에서 참가자들의 상경을 차단했다. 또한 현장에서는 살수차와 헬기를 동원해 집회를 저지했다. 참가자들은 물대포와 곤봉 세례에도 불구하고 저지선을 넘으려고 시도했고, 그 와중에 많은 사람이 다쳤다. 한 농민은 분신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 긴박하고도 치열한 풍경은 1987년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범국민적 시위 현장을 연상케 했다. 다만 87년과 다른 점은 그 많은 사람들이 공권력의 극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집회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이유가 다름 아닌 직접적 생존권의 문제라는 점이었다. 시위 주요 참가자들은 학생들도, 넥타이부대도 아니다. 태평스러운 시절이라면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고 군주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며 살아간다던 농민들이다. 그 농민들이 생업을 뒤로한 채 비싼 차비까지 물어가며 상경을 시도한 것이다.
87년 이후 2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의 상황은 더 암울하다. 탄압의 주체가 독재정권이 아니라 바로 5년 전 대선에서 ‘진보’의 이름으로 당선된 정권이기 때문이다. 과연 ‘진보’란 무엇일까?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국민의 이름으로 당선된 노무현 정부는 철저히 농민을 외면한 정책을 펼쳤다. 반대하는 목소리에 귀를 열지 않는 ‘소신’이 중대한 정책을 결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왜 수많은 농민들이 ‘노무현’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며 어려운 상경길을 택했는지 그는 한번쯤 생각해봐야 했다.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 버스에 몸을 실었던 시부모님이 도중에 되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나는 한편 안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왜 이분들이 노구를 이끌고 상경하려고 하셨을까.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지켜내려는 그분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상당수 도시인들의 현재는 그러한 부모님들과 농촌이 만들어준 것일 터이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농민의 자식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그곳으로 낙향할 것이라고 한다. 농민들의 생존권을 철저하게 무시한 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강행한 그가 농민의 땅으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고향’ 혹은 ‘시골’이라 불리는 그곳은 도시인들이 여생을 보낼 안식처이기 전에 농사를 지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1년에 1000만원에 달하는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이들의 삶의 터전이다.
농민과 비정규직 노동자도 국민이다.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후 노무현 정부가 들었던 자축의 잔은 과연 ‘어떤 국민들’을 위한 것이었는가? 농민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빈곤화를 대가로 과연 경제 성장이 가능할 것인가? 그것은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 농민이 살아갈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추진하는 자유무역협정은 국정 과제라는 미명 아래 이뤄지는 국가적 폭력일 뿐이다. 농민은 결코 도시민과 외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제대로 살아가기 어려운 공동체의 일부다. 과연 대선 주자들 중 누가 농민을 끌어안는 정책을 약속하고 있는지 엄중히 따져볼 일이다. 다시는 국민들로 하여금 ‘살 길이 막막한’ 처지로 몰아가는 정치인을 선택하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정치인이 감히 국민의 이름으로 희망을 말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기 위해서 작금의 현실은 값비싼 교훈이 되어야 할 것이다.
권수현/여성민우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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