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 논설위원
유레카
폭력은 두렵다. 위험하다. 뼈아픈 고통과 상처를 남긴다. 사전을 찾아보니 폭력은 ‘불법한 방법으로 행사되는 물리적 강제력’이라고 써놓았다. 역사는 이런 정의를 무색하게 한다. 과거 ‘법’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폭력이 자행됐던가. 가장 두렵고 위험한 폭력은 ‘국가가 자국민과 타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집단학살 또는 반인권적 폭력행사’다. 곧 국가폭력이다.
20세기는 국가폭력의 시대였다고 할 만하다. 정치학자 브르제진스키는 이 시대에 정치적 동기로 죽음을 당한 사람을 무려 1억6700만명에서 1억7500만명으로 추산했다. 독일 나치에 학살당한 유대인이 582만명, 스탈린 치하에서 비명횡사한 러시아인이 4천만명, 난징에서 일본군 총포에 목숨을 잃은 중국인이 30만명,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의 폭력으로 숨진 이들이 30만~40만명이다. 폴포트 집권기의 캄보디아, 아프리카의 르완다와 수단, ‘인종청소’의 보스니아와 코소보 등 일일이 세기가 벅차다.
대한민국 현대사도 무수한 국가폭력으로 점철돼 있다.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집단학살, 독재정권 시대의 정적 살해, 법의 이름으로 행해진 갖은 폭행 및 고문 치사에 이르기까지 ….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는 ‘우리의 현대 정치사는 지배와 저항의 무한 쌍곡선으로 이루어진 국가폭력의 역사이자 살(殺)의 정치사였다’고 말한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어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과 관련해 지난 넉 달 동안 유해 400여구와 1천여점의 유물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또 이 위원회의 노력으로 16년 전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진실도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이 땅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두 사건은, 진실은 결국 찾고자 하는 노력이 전제돼야 밝혀진다는 걸 보여주는 한편, 아직도 우리 곁엔 허위의 껍질 속에 갇혀 있는 국가폭력 사례가 무수히 있음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창곤 논설위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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