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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대통령 선거와 떡고물 이론 / 강수돌

등록 2007-11-21 18:28

강수돌/고려대 교수·조치원 신안1리 이장
강수돌/고려대 교수·조치원 신안1리 이장
나라살림가족살림
한 채용전문 회사에서 지난 10월 말 직장인 1932명을 대상으로 ‘가장 관심 가는 대선공약’에 대해 물었더니, 응답자의 37.4%가 ‘경제성장’을 꼽았다. 뒤를 이어 ‘사회 양극화 문제’(26.3%)와 ‘실업 문제’(12.2%)가 따랐다.

대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 아직도 후보들이 상호 정책 경쟁보다는 헐뜯기 경쟁 중이다. 그나마 내놓은 공약들을 자세히 보면, 대체로 ‘경제성장’과 ‘일자리’ 문제를 중시한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건, 과연 경제성장과 일자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문제다.

지금까지 우리는 경제성장이 부족해서 행복보다 스트레스가 날로 증가하는 삶을 살아온 건 아니다. 그리고 경제성장이 모자라 일자리가 부족한 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경제지표가 후졌던 1960년엔 국민 1인당 총생산이 약 80달러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약 2만달러다. 대략 경제는 200배 성장했다. 그런데 일자리나 행복감은 얼마나 늘었나?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경제성장과 일자리, 나아가 행복감은 별 상관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여태 배운 바와 전혀 다른 이 황당한 현상은 왜 그런가?

그 뿌리는 우리가 경험하는 이 경제가 살림살이 경제가 아니라 돈벌이 경제란 데 있다. 살림살이 경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에 공존과 조화를 도모한다. 그러나 돈벌이 경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에 약육강식, 승자독점 원리가 지배한다. 물론 돈벌이 경제에서도 약자는 모두 죽고 강자만 사는 건 아니다. 중강자도 있기 때문이다. 중강자는 한편으로는 약자의 단물을 뽑지만 다른 편으론 강자에게 충성하는, 다소 달콤하면서도 동시에 고달픈 삶을 산다. 생각건대 우리 삶에서 약자란 여성, 비정규직, 이주민, 저학력자, 실업자, 노인, 아이, 장애인, 자연 생태계 등이며, 중강자란 남성, 정규직, 한국인, 고학력자, 취업자, 청장년, 어른, 비장애인, 인간 전체 등이다. 그러면 강자란 과연 누구인가? 그것은 돈을 주무르는 자본가,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인과 거대 언론, 그 앞잡이 노릇을 하는 각종 전문가, 그리고 돈벌이 시스템 그 자체다. 이렇게 약자, 중강자, 강자는 전체적으로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은 사다리 질서를 이룬다.

이런 구조 위에서 대한민국 국민 5천만은 너도나도 ‘위로 올라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어떤 노동자는 야간 잔업, 철야, 특근도 마다하지 않고 일자리 있을 때 돈 벌어 아이들 과외라도 더 시켜 일류대에 보내고자 코피를 흘린다. 어떤 학부모는 약삭빠른 자를 통해 특정 입시 문제를 돈 주고 산다. 한마디로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은 비단 ‘바다 이야기’와 같은 특수 상황에만 있는 게 아니다. 왜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 걸까? 그것은 한마디로 앞의 사다리 질서 뒤에 역사다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즉 위는 넓고 아래는 좁은 또다른 사다리, 바로 이걸 나는 ‘떡고물 사다리’라 부른다. 사다리의 높은 곳에 일단 오르기만 하면 가만히 있어도 수천, 수억의 떡고물이 쏟아진다. 최근 한 기업이 청와대나 법조인 같은 강자들에게 체계적으로 떡고물을 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떡고물 사다리’ 이론이 진실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 모든 문제의 해법은 경제성장으로 ‘떡의 크기’를 키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공짜 떡고물’, 즉 기득권 구조 자체를 타파하는 데 있다. 그런데도 왜 어느 후보도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가? 대통령 자리조차 일종의 떡고물 자리라 그런가?

강수돌/고려대 교수·조치원 신안1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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