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 논설위원
유레카
투명은 ‘물처럼 속이 훤히 비쳐 맑고 꾸밈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깨끗함·정직의 다른 말이며, 부패의 반대말이다. 믿음을 주는 결정적 요소다. 투명과 정직은 오랫동안 윤리나 종교의 영역이었다. 근년 들어 경영학과 기업이 이 말을 주목했다. 새로운 비즈니스 패러다임, ‘투명경영’은 바로 그 산물이다. 언제 누가 처음 이 개념을 사용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기업경영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 ‘투명(성)’이란 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가 아닌가 싶다. 기업의 투명성 결여가 외환위기를 빚은 주요 원인의 하나라는 인식에서다. 당시 언론과 학계 등은 ‘회계적 투명성’,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이란 말을 자주 썼다.
미국에서는 2002년 줄줄이 발생한 기업 회계부정 사건들 이후 이 용어 사용이 잦았다고 한다. 엔론·월드컴·아서앤더슨 등 거대 기업들이 줄줄이 부패에 연루돼 무너졌다. 당시 미국의 많은 기업들은 1929년 뉴욕 주식시장의 주가 대폭락 사태 이후 가장 심각한 신뢰 위기를 겪었다.
선진 각국에서는 인터넷과 네트워크 시대를 맞아‘투명경영’은 이제 기업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 채택해야 할 핵심 전략으로 여겨지고 있다. 시장이 엑스선으로 보듯 투명한 환경으로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명성에 바탕을 둔 리더십만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기업의 올바른 중장기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데도 투명성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근래 회자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윤리경영’, ‘인권경영’ 등의 개념은 이런 시대적 조류의 반영이다.
삼성 비자금과 비비케이 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아직 실체가 확연히 드러난 건 아니지만 지금껏 밝혀진 내용만 봐도 두 사건은 ‘투명경영’이란 시대적 조류를 거스르는 최악의 기업경영 사례로 기록될 것 같다.
이창곤 논설위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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