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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자선의 정치, 공감의 정치 / 권수현

등록 2007-12-03 18:46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야!한국사회
이맘때가 되면 고3 때보다 극심한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을 지켜보게 된다. 자신의 삶에 대한 총체적 불안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그들의 눈빛은 흔들린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졸업 이후 그 어느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무소속의 시기도 있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난 후 2등 시민이 될 것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하철 출구 좌판 앞에 물건을 파는 할머니들, 박스나 빈병들이 실린 수레를 밀면서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노인들. 내 둘레에 늘 있었던 풍경이었으나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또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다. 그 전에는 행인들에게 가게를 알리는 전단지나 명함을 나눠주는 사람들의 ‘집요함’에 가끔 짜증과 경멸의 눈길을 보낸 적이 있었지만 그 후로는 그들을 대하는 내 마음속에 연민이 들어와 있었다. 그것은 동정의 차원이 아니라 공감의 차원이었다. 나의 처지는 난생처음 어쩔 수 없이 그들과 같은 자리에 서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더불어 살아가는 문제’에 대한 고민은 그때야 비로소 시작되었던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매스컴에는 상투적인 장면들이 보도된다. 선거 후보들이 독거노인들, 장애인시설, 재래시장 상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악수를 하거나 포용하는 장면들이 그것이다. 그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쓴웃음을 짓게 된다. “저렇게 높으신 분들이 언제 서민들 생활에 관심을 가져보기는 했나!” 물론 개중에는 평소에도 서민들을 만나고 다니는 후보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후보들의 행보는 표를 얻기 위한 일시적 퍼포먼스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물론 평소에 관심이 없었으니 선거 때라도 서민들을 만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후보들의 행보가 사회 양극화 해소와 서민 생활 안정이라는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성실한 고민과 병행된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서구의 학자 스티븐 캐슬즈는 경제 성장의 근간이 고용 불안정과 사회적 불평등에 기반하고 있는 사회에서 서민과 빈곤계층을 위한 정책이 오히려 빈곤을 가속화시키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와 주변화를 낳을 뿐이라는 의외의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그 사회의 구조적 차별 문제를 간과하는 정책은 서민의 빈곤화를 막을 수도 없으며, 이른바 ‘주변적 시민’에게 실시하는 복지 프로그램이나 정책은 모든 시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 차원에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베푸는 구호와 혜택의 차원에서 시행할 뿐이라는 것이다.

대선 후보들 간에 경제적 재분배와 정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통합 정책에 대한 토론과 경쟁이 실종된 상태에서, 정치인들의 ‘방문 퍼포먼스’가 과연 자선과 동정의 정치를 넘어서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한국 사회는 점점 더 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온전한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일자리를 갖더라도 정규직 일자리는 점점 소수에게만 분배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제성장 지표가 서민 경제의 실질적 성장과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경제성장 지표는 그 성장의 과실을 누리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진정 서민들을 위한 ‘공감의 정치’를 펼치기 위해서는, 선거 때마다 상투적으로 벌이는 일시적인 ‘방문 퍼포먼스’를 지양하고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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