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논설위원
유레카
당나라 측천여제 시절 이경업이란 이가 반란을 일으켰다. 요즘 방영 중인 방송드라마 ‘대조영’에 나오는 이적의 손자다. 측천은 난을 평정한 뒤 ‘밀고’를 통해 신하들을 통제하기로 마음먹었다. 백성의 소리를 듣는다는 구실로 관청 사방에 구리로 만든 상자 넷을 설치해 ‘투서’를 하도록 부추긴 것이다. 신하들은 투서함에 언제 자신을 모함하는 글이 던져져 있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 측천에게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투서함을 제안한 이는 이경업에게 무기 제작법을 가르친 적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 때문에 그는 곧 투서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기원전 6세기 아테네의 명장 페릴루스는 시칠리아의 폭군 팔라리스의 명령에 따라 구리로 암소를 만들었다. 사람을 그 안에 넣고 태워 죽이는 기구였다. 형을 당할 때 소 울음소리를 낸다고 하여 ‘시칠리아의 암소’로 불리는 그 사형기구의 첫 희생자도 그것을 만든 페릴루스 자신이었다.
프랑스 혁명 뒤 의사 출신의 국민의회 의원 기요틴은 참혹한 참수 사형제도를 덜 고통스런 방법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는 구체적인 설계도를 내지는 않았지만, ‘기계가 빛처럼 떨어지는’ 그 사형기구에 대한 제안은 단두대로 현실화됐다. 불행하게도 그 또한 1만4천여명에 이르는 단두대의 희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신이 만든 제도나 기구, 또는 약속에 자신이 희생당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병든 동료를 병원이나 요양소로 보내게 했던 레닌은 자신이 병에 들자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요양을 떠나야 했다. 진나라를 탈출하려던 상앙은 증명서가 없는 사람을 재워주지 못하게 한 자신이 만든 법에 따라 여관 주인에게 밀려나 국경을 떠돌다 붙잡혀 능지처참을 당했다. 요즘 대통령 후보들이 쏟아내는 공약 가운데도, 뒷날 자신에게 덫이 될 것이 있을 것이다. 신중해야 할 일이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