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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착한 기업인도 있습니다 / 이원재

등록 2007-12-05 18:39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나라살림가족살림
“40년 경제인을 하던 사람이, 어떻게 사업을 하면서 도덕적 윤리적으로 했겠습니까? 다들 이해하는 거죠.”

<한국방송>에서 주말 황금시간대에 방영한 ‘대폿집 토크’라는 프로그램을 보던 중, 내 귀에 꽂힌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의 한마디였다. 내로라 하는 정치인 넷이 등장해 소주잔을 기울이며 대통령 선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후보 도덕성 논란과 관련된 갑론을박 가운데 이 한 마디가, 내게는 누가 대통령으로 적합한지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생각거리가 됐다.

과거에 기업인은 곧잘 표독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묘사되곤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 교과서는 기업인을 사리사욕을 챙기며 부정부패를 일삼는 집단으로 그렸다. 만화책에 가끔 등장하는 사장님은 배불뚝이 대머리이고 게으른데다 아랫사람을 괴롭히기까지 하는 악한으로 등장하곤 했다. 홍 의원의 묘사와 일맥상통한다. 돈을 많이 벌려면 도덕적일 수만은 없고, 기업을 키우거나 경제를 살리려면 비윤리적 행위는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이건 어쩌면 우리 국민의 일반적 인식일지도 모른다.

정말 기업인은 도덕적일 수 없는 것일까? 경제는 윤리와 상극일까?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크레이그 스미스 교수는 2003년 <캘리포니아 매니지먼트 리뷰>에 쓴 글에서 ‘다니엘 셀트와 그 아들’이라는 19세기 기업과 최고경영자 타이터스 셀트를 소개한다.

영국 브래드퍼드는 산업혁명 이전 평화롭게 양을 치던 시골 마을이었다. 그런데 산업혁명과 함께 직물공장이 들어선 뒤 역사상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주목받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빨리 성장하는 바람에 성장의 부작용을 통제할 법·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심각한 문제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른다. 공장들은 폐수를 강물에 마구 버렸고, 오염된 물을 정수조차 하지 않고 마신 주민들은 병에 걸렸다. 도시에는 콜레라와 장티푸스가 창궐해 사망자가 속출했다. 폐수와 노동에 시달린 아이들은 죽어가서, 태어난 아이의 70%가 15살 이전에 숨지는 지경이 됐다.

이 도시의 가장 큰 공장을 소유한 ‘다니엘 셀트와 그 아들’은 이런 상황을 보고 친환경 공정을 개발한다. 그리고 이 공정을 다른 공장에 전파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자 이 회사는 공장 이전을 결단한다. 직원들을 환경오염에서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 기업은 외곽 지역에 아예 조그만 자급자족형 도시를 만들었다. 숙소를 지어 직원들을 입주시키고 직접 저수지를 만들어 맑은 물을 공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병원·학교·공원·교회·도서관을 지어 직원들이 공공 서비스의 혜택을 누리게까지 했다.

이 사례는 150년이나 지난 자본주의 초기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어린이들을 16시간씩 부리면서 원시 자본을 축적하던 시대다. 그런 시대의 기업에도 윤리적 결정을 내리면서 생존할 여지가 있었다는 증거다. 윤리는 기업이 탄생한 순간부터, 경제가 존재한 순간부터 있었다. 언제나 선택의 여지는 있었다.

지금은 더욱 그렇다. 사회 책임경영으로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 그런 뜻을 가진 ‘유엔 글로벌 콤팩트’에 가입한 한국기업만도 벌써 100곳이 넘었다. 기업과 윤리는 상극이라며, 이 기업인들을 모욕해서는 곤란하다.

대전 지역에서 출몰하며 100여건의 성폭행을 저질렀던 ‘대전 발바리’가 잡혔을 때, 그의 아내는 말했다. “집에서는 좋은 남편이었는데 … 한 달도 빠지지 않고 생활비를 벌어다 주었고 …” 우리는 떳떳하게 말할 것인가, 대전 발바리는 결국, 훌륭한 가장이었다고? 그가 벌어다 준 돈으로 행복해졌다고?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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