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원/문학평론가
야!한국사회
“아룬다티 로이 아시죠?” 소설을 쓰고 있는 한 후배가 물었다. 물론 나는 잘 알고 있다. <작은 것들의 신>으로 부커상을 받은 뒤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른 인도의 여성 작가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스스로를 ‘활동가’로 규정하면서, 인도 사회의 반핵, 환경, 반세계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여성 멸시의 분위기가 다른 사회보다 압도적인 인도의 현실에서, 아룬다티 로이의 활동은 인습적 편견과 함께 직접행동에 따른 법의 압력에 자주 노출된다.
1990년대 이후 시민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활동가라는 표현이 익숙해졌다. 내가 알고 있는 지인들 가운데서도 스스로를 활동가로 규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시민운동단체에 소속되어, 한국 사회의 다채로운 억압구조와 부패의 사슬을 걷어내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활동가로 사는 것은 괴롭다. 그들이 단체에서 받는 활동비는 최저임금은 고사하고, 대학생의 한달 용돈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가와 시장을 투명하게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공적 지원 없이 철저하게 후원회비로 운영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고 비판은 하면서도, 정작 활동가들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대단히 낮은 수준에 있다.
그러한데도 한국의 활동가들은 이 고통스러운 환경을 거슬러, 한국 사회의 열악한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기꺼이 싸워 왔다. 이들의 소명에 가까운 직접행동이 있어, 거인들이 지배하는 난쟁이 나라의 시민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알게 모르게 확대시켜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활동가에 대한 탄압의 양식이 자못 고약해지고 있다.
“너희들은 직접행동을 해라. 우리는 벌금을 걷겠다.” 이게 요즘 대한민국의 정부와 사법부가 보여주고 있는 행태다. 노동3권을 제창하는 노동자들에게, 악덕 기업들이 손배소 등을 통해서 경제적인 파산 상태로 내모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즈음의 활동가들은 직접행동에 따른 벌금 탄압에 신음하고 있다. 가령 지난해 평택에서 있었던 불복종 직접행동의 결과로 인권운동 사랑방 활동가들은 개인당 100여만원 이상의 벌금을 부과받았고, 이 때문에 소송으로 인한 비용까지 떠안게 되었다. 사정은 다른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곳은 벌금액이 1억원을 넘어선 곳도 있다고 한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사례는 장애인 인권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헌신했던 인권활동가들에게 부과한 벌금이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포함한 차별 철폐를 위해 직접행동에 나섰던 활동가 66명에게 법원은 2007년 8월 현재 총 1억2381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활동가들 중에는 이규식씨와 같은 중증장애인도 있는데, 경찰은 486만원의 벌금을 낼 수 없었던 이규식씨를 구속했고, 노역을 통해 벌금을 갚게 했다.
아무리 시장 전체주의라지만, 시민들의 언로와 행동 모두를 ‘돈’으로 제어하겠다는 발상은, 오늘의 민주주의를 가감 없이 ‘금권 민주주의’로 인식하게 만든다. 천문학적 돈을 횡령하거나 편법 상속한 기업가 집단에 대한 정부와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과 이들 활동가들에 대한 벌금 탄압을 비교해 보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정의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활동가들의 직접행동도 시민사회가 아니라, 교도소의 싸늘한 노역장 안에서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울한 상상이 들기도 한다. 지난 연대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랐는데, 어찌된 게 오늘의 포스트 민주주의는 ‘벌금’ 먹는 하마란 말이냐.
이명원/문학평론가
이명원/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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