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논설위원
유레카
상 받는 걸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독특한 데가 있다. 시인 보들레르는 “상에는 인간 및 인간성에 상처를 주며 염치를 무디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고 거부감을 표시했다. 그는 “모든 상은 불행을 초래하는 악마의 발명품”이라고도 했다. 20세기 음악계의 이단아로 꼽히는 작곡가 에릭 사티는 “레종 도뇌르 훈장을 사양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란다. 그 훈장을 받게 처신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걸음 더 나아갔다.
장 폴 싸르트르도 보들레르의 후예답다. 그는 1964년 노벨문학상 후보 명단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왕립 스웨덴 아카데미에 “수상자 명단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상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한) 투쟁이 끝났을 때만 주는 것”이라며, “작가는 스스로 기관화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썼다. 그는 앞서 레종 도뇌르 훈장도 거부한 바 있다.
미국 뉴욕 출신 작가 조너선 리텔은 <호의적인 사람들>이란 작품으로 2005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대상, 지난해 콩쿠르상 수상자가 됐으나 “문학상이 도대체 문학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시상식에 한번도 가지 않았다. 물론 가명으로 소설을 써서, 생애에 한 번만 받게 돼 있는 콩쿠르상을 두 번 탄 로맹 가리도 있으니, 프랑스 사람 모두가 상을 싫어하진 않는 모양이다.
연말이 되자 곳곳에서 이런저런 상을 주는 행사가 많다. 많은 이들이 목숨 걸듯 매달리는 걸 보면 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상은 ‘대통령 당선’인 모양이다. 그동안의 선거전을 돌아보면 “상이 인간의 염치를 무디게 한다”는 보들레르의 말이 아주 틀리지 않는 듯하다. 오늘밤 그 상을 탈 사람이 정해진다. ‘불행을 초래하는 악마의 발명품’을 받았다는 생각으로, 늘 자신을 경계하길 바란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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