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 논설위원
유레카
미국의 43대 대통령 조지 부시는 2000년 대선에서 재개표 논란으로 예정일보다 다섯 주나 지난 뒤에야 당선 통보를 받았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정권 인수 기간의 절반을 무작정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 부시의 정권 인수 작업은 대체로 나무랄 데 없었다는 게 상당수 미국 정치학자들의 평가다. 이는 무엇보다 1년 전부터 준비해둔 정권 인수 구상 덕분이었다. 이라크 침공 등 여러 면에서 ‘비호감’이지만, 부시는 나름대로 ‘준비된 대통령’이었다.
미국과 비슷한 대통령제를 시행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권 인수는 어떨까? 힘이 모든 걸 압도했던 1987년 6월 항쟁 이전은 굳이 논할 게 없다. 형식적 틀이 갖춰진 건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 때였다. 1988년 1월 ‘대통령 취임 준비위원회 설치령’이 공포돼 정권 인수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인수위란 이름은 김영삼 당선자 시절부터 등장했다. 2003년에는 아예 법을 만들었다. 제도적으로 정권 인수 절차가 공고해진 것이다.
하지만 내용 면에서 보면 아직은 호평을 받기 어렵다. 민주화 이후에도 정권 인수 과정은 지역안배, 정치연합, 준비부족 등 때문에 부실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정당정치가 자리를 잡지 못해 튼실한 정권 인수 구상이 미리 마련되지 못한데다, 대선 판이 정책이나 집권 구상보다 오직 ‘올인’의 권력게임의 틀 속에만 놓인 상황 탓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학>의 저자인 최평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대통령직의 성패는 첫 단추인 정권 인수 작업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정권 인수의 준비 정도와 인수 과정에서 국정운영의 비전 및 정책 우선 순위의 수립 등이 얼마나 이뤄지느냐 등에 따라 대통령직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난다는 설명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그의 인수위 구성과 정권 인수 작업은 이명박 정부 성패의 첫 척도일 수가 있다.
이창곤 논설위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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