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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성공시대의 ‘여성학 철거’ / 김영옥

등록 2007-12-26 18:50수정 2007-12-27 10:21

영옥/이화여대 여성연구원 연구교수
영옥/이화여대 여성연구원 연구교수
야!한국사회
그동안 우리는 지구화의 다양한 양상들과 그에 대한 언설이 우리의 일상을 설명하고 이주민들과의 공존이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의제로 등장하면서 국민으로 호명되는 것의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되새기는 훈련을 쌓아왔다. 그러나 대선기간 내내 계속 ‘사랑하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호명되면서 우리는 잠시 국민과 시민 사이, 국민과 비국민 사이에 대한 생각을 접고 ‘사랑받는 국민’의 자격으로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국민을 속일 순 없다’는 말은 모든 정당이 내건 자기 정당성의 표어였고, 실제로 원하던 정권교체를 이룬 국민은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누구인가. 사랑받고 존경받는 국민 아닌가. 봐라, 나는 정권을 교체시킬 힘이 있다.’ 이것은 거의 권리를 넘어선 권력 의식으로 보인다. 이제 국민도 권력 보유자인 것이다. 그런데 국민은 과연 권력을 지니고 있는가. 투표하는 순간 속지 않았으면 앞으로도 5년 내내 속지 않을 것인가.

그제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발표되었다. ‘직선제 총장으로는 유일하게 내리 4선에 성공한 인물’이라는 언론의 설명이 뒤따른다. 14년간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그는 학교 캠퍼스를 세 배로 늘렸고 건물 21개를 지어 ‘토목건축 총장’이라는 말도 들은 바 있는 ‘시이오 총장’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청계천을 건설했고 이번 인수위원장은 대학 건물 21개를 건설했다. 한국 사회에서 건설은 곧 혁신이고 성공이다. 꿈의 현현이다. 새로운 삶에 대한 꿈을 안고 한국으로 이주하는 국제결혼 여성들이 한국에 대해 갖는 첫 인상은 거의 대부분 인천공항의 세련됨과 연관되어 있다. 외국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한국 사람들 역시 인천공항을 들어서면서 자신도 모르게 깊고 편안한 숨을 내쉬며 한국 국민인 게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건설은 허물고 부수는 ‘철거’라는 악몽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좀더 멋지고 좀더 이윤이 되는 것을 세우기 위해서는, 남루하고 당장에 괄목할 만한 이윤을 내지 못하는 것은 철거되어야 한다. 올해 숙명여대에서는 협동과정으로 10년간 존재했던 여성학과가 ‘철거’ 선고를 받았다. 해명과 대화를 원하는 학생들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여성학은 이제 수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10돌 축하파티를 준비하던 학생들은 가라앉지 않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애도의 파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대학의 존립 여부에 대해서 찬반 논의가 많은 것처럼 여성학과의 존립 여부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성학과야말로 여자대학의 정체성을 가장 진지하게 성찰하고 그 미래 비전을 고민하는 곳이어야 한다. 대학은 지식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지식생산은 새로운 질문들을 전제로 한다. 젠더 관점에서 지식생산과 사회변혁, 그리고 행복한 삶을 질문하는 것이 ‘여전히’ 절실하다는 인식이야말로 여성 리더 양성의 토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대선에서 가장 첨예한 여성정책 의제 중 하나는 여성가족부의 존립이었다. 인수위원장은 “우리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고 잘 섬기는 정부가 되도록 비전과 전략을 잘 세우겠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제야말로 누가 ‘우리 국민’인지, 그 우리 국민이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차분히 논의할 때다. 행복의 비전이 철거를 두려워하지 않는 건설 속에 세워질까봐 그렇다. 잘못된 방식으로 섬김과 사랑을 받게 될까봐 근심이 큰 사람들도 그 ‘우리 국민’ 속에는 많다는 것을 대통령 당선자나 인수위원장이 새겨주길 바란다.

김영옥/이화여대 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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