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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칼럼] 선무당의 칼춤

등록 2008-01-06 18:38수정 2008-01-06 23:18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칼럼
학력 문제로 가장 고민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학업성취도 조사(PISA·피사)에선 거의 매번 중하위권을 맴돈다. 2003년 미국의 자체 평가(국가표준시험)에서도 8학년의 수학 기초학력 미달률이 3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은 11.5%) 고교생 졸업률은 70%(공립고교의 경우 50%)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부시 행정부는 학력신장법까지 제정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 정부나 언론은 새로운 모델을 찾느라 분주했다. 대학 종합평가로 명성을 쌓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 앤 월드리포트>는 지난 3월 미국이 교육 부문에서 가장 본받아야 할 나라로 핀란드를 꼽았다. 새로운 건 아니었다. 다른 유력지들도 핀란드 교육 방식을 본받자는 데 이구동성이었다. 피사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의 국가경쟁력 조사에서 교육경쟁력 1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핀란드의 이런 교육 경쟁력은, 600여년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지구촌 변방 핀란드의 국가경쟁력을 세계 6위로 끌어올리면서, 핀란드를 첨단산업의 기린아로 키웠다.

핀란드의 교육정책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출신과 경제적 배경과 관계없이 타고난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99%가 공립이며, 모든 과정이 무상이다. 교재비나 생활비의 일부까지 제공하기도 한다. 수학능력 시험이나 본고사처럼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일은 없다. 나라에서 치르는 자격시험만 통과하면 어느 대학이든 지망할 수 있고, 각 대학은 집단 토론 등 간단한 절차를 거쳐 학생들을 선발한다. 그러니 대학 서열이란 것도 없다. 다른 나라 연구기관이 대학 서열을 매기는 걸 보고 핀란드인들은 그저 웃기만 한다.

지난 10월 방한했던 핀란드 교장협의회 피터 존슨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경쟁은 스포츠에나 필요하지, 교육엔 필요 없습니다.” 경쟁을 붙일 경우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학생들은 학업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잃어 장기적으론 학습효과를 떨어뜨린다. “모든 학생은 서로 다른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학생의 능력에 맞춰 교육을 하는 게 교사의 일입니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다양한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며, 각자에겐 서로 다른 능력이 있음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정책은 1970년대부터 20여년에 걸쳐 완성됐다. 총리가 바뀐다고 교육정책이 바뀌는 일은 없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교육부는 물론 교육정책에 대한 해체작업에 들어갔다. 지금의 정책은 문민정부가 토대를 닦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꾸준히 발전시켜 온 것이다. 12~13년에 걸친 작업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판이다. 물론 정책을 바꿀 순 있다. 문제는 정책 전환의 철학과 목표, 그리고 비전이다. 그런데 인수위엔 그런 청사진이 없다. 그저 역주행이다. 중등과정은 실패한 미국 모델을 본뜨고, 대입제도 등은 30년 전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나마 제시한 정책 목표와 수단도 서로 충돌한다. 사교육비 절감을 강조하지만, 이들의 정책에 환호하는 건 사설 학원이다. 교육의 형평성을 주장하지만, 입시를 확대하고 귀족학교와 서민학교를 분리하는 것으론 불평등만 심화시킨다. 학력 신장을 거론하지만, 핀란드엔 입시제도가 없다.

인수위에 합리적인 교육 전문가가 없다는 건 더 큰 문제다. 그저 호령할 줄만 알고, 제가 아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우물안 개구리뿐이다. 한나라당은 참여정부를 5년 내내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지금 인수위를 보면 선무당이 칼춤 추는 것 같다. 끔찍하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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