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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박정희식 모델이 부활하는가? / 유종일

등록 2008-01-09 19:03

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나라살림가족살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일요일도 쉬지 않고 강행군을 하여 정부 부처의 업무보고를 마쳤다. 이 과정에서 잡음도 있었고 혼선도 있었지만 대단한 의욕과 노력을 보여준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명박 당선인의 소신을 반영해서 새 정부는 경제 살리기에 집중할 모양새다. 하지만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나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세계경제 여건이 악화하는 가운데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능력을 보여주고 싶은 새 집권세력이 경제성장을 끌어올리려고 무리한 경제운용을 하다가 부작용을 낳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특히 1970년대 건설 신화의 주인공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머릿속에는 알게 모르게 박정희식 경제 패러다임이 들어 있는 것 같아 우려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경험의 산물이라는 점도 있지만, 인수위의 활동에서 이미 그런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정부조직 개편이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라지만 경제정책의 총괄 및 조정 기능을 청와대에 집중하는 방안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이 관심 사안을 직접 챙기면서 경제정책의 추진력을 강화하는 박정희식 모델이다. 그러나 이런 조직개편은 권한 축소에 따른 일선 경제부처의 무력화나 경제정책이 정치논리에 휘둘릴 가능성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건설과 물적 투자를 성장의 축으로 하고 정부 주도형 발전을 추구했던 박정희 시대에는 청와대의 강력한 추진력이 중요했을지 몰라도 21세기 세계화와 정보화 시대에 혁신과 인적투자 중심의 성장을 이루는 데는 합리적인 시장경제 시스템의 확립과 원칙 있는 국정운영이 더욱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재정운용 방향도 과거회귀의 냄새가 난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2008 예산안은 대통령 선거 후 한나라당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것인데 그 특징은 복지지출의 삭감과 사회간접자본 예산의 대폭 증액이다. 이것은 새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과 정반대 방향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복지지출은 형편없이 낮고 반면에 건설투자는 최고수준을 보이고 있다. 굳이 이런 통계가 아니더라도 사회복지의 허술함과 미흡함은 일상에서 절감하는 바이며, 쓸데없이 만들어 놨다 싶은 도로 등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회간접자본 시설도 쉽게 눈에 띈다. 이제는 시멘트가 아닌 사람에 대한 투자를 중심으로 사고할 때다.

마지막으로 박정희식 관치경제의 습성이 엿보이는 일들이 있었다. 말로는 민간주도요 시장경제를 주장하는데, 조속히 성과를 내겠다는 의욕이 앞서서 관치경제적인 행태가 나타날 가능성이 다분히 있는 것 같다. 통신요금을 20% 인하하라는 인수위의 요구가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사기업의 경영행위에 간섭하는 것이라는 반발을 샀던 것이 좋은 예다. 당선인이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투자를 독려하고, 총수들은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화답하는 것도 정상적인 시장경제의 모습은 아니다. 더구나 최근 국가정보원이 주요 그룹들을 상대로 투자와 고용 계획을 상세히 파악했다고 한다. 과연 이것이 국정원의 업무영역에 속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거니와 이것이 이명박식 관치경제의 조짐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인수위는 내부적으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확정했다고 한다. 객관적인 경제성 검토와 여론수렴에는 관심이 없고 밀어붙이기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중심의 강한 추진력을 내세우는 정부, 복지는 뒤로 미루고 건설투자에 우선순위를 두는 정부, 민의와 시장원리를 중시하기보다는 정부의 의지를 밀어붙이는 정부의 모습을 예감케 한다. 개발 초기단계에나 적합했던 박정희식 모델이 우리의 미래를 열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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