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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착한 경제”의 코드 / 이원재

등록 2008-01-30 19:44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나라살림가족살림
부산의 엔지오 활동가들을 만났다. 사회생활의 대부분을 ‘좋은 일’을 하는 데 헌신적으로 보낸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이제 ‘돈벌이’였다. 자신이 이끄는 조직이 하고 있는 좋은 일을 지속시키려면 경제적 자립이 필요하다는 절박감이 감돌았다. 어떻게 하면 친환경 식품을 더 잘 유통시킬 수 있을지 토론이 벌어졌다. “착한 일을 하면서 동시에 돈을 버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강의 중 내게 전달된 쪽지에 적힌 질문이었다. ‘사회적기업 허브구축 부산지역 실행위원회’가 연 강연회 자리였다.

‘선한 기업’ 창업을 꿈꾸는 대학생들을 만났다.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좋은 일에 멋지게 쓰고 싶기도 한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기업 경영은 하고 싶지만, 과거 한국 대기업처럼 사회와 반하는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성공하기는 싫다고 했다. “의미 있는 방법으로 경영하면서, 돈을 많이 벌고, 번 돈을 좋은 곳에 쓰는 기업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이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대학생들에게 기업과 사회의 관계를 가르치는 ‘지속 가능 경영학교’ 강의에서였다.

선한 지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흔히 ‘경제’를 천박하고, 심지어 사악한 것으로 여기곤 했다. 그러나 경제 행위, 곧 사람들에게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정당한 대가를 취득하는 행위는, 결코 그 자체로 천박한 것도 사악한 것도 아니다. 그저 특정한 목적에 투입할 자원을 획득하는 방법일 뿐이다.

그런데 경제가 천박하고 사악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목적과 수단이 뒤섞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마치 사람을 잘라 비용을 최소화하고 소비자를 속여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듯 행동했다. 좋은 제품을 만들며 사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원래 목적은 사라져 버렸다. 온가족이 따뜻하게 살아갈 집을 마련하려 시장에 나선 가장은, 부동산 광풍에 휘말리며 얼치기 투기꾼으로 변해 버렸다. 수단이라야 할 돈벌이가 목적의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경제는 매우 천박하고 사악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여전히 목적과 수단은 엄연히 다르다는 게, 그리고 달라야 한다는 게 교과서의 정답이다. 그래서 ‘착한 경제’라는 조합이 가능하다. 착한 기업 창업을 꿈꾸는 대학생과 자립을 지향하는 엔지오 활동가의 고민 속에는 같은 코드가 숨어 있었다. 선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적과, 시장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해 그 목적을 이루는 데 투입하겠다는 방법을 이야기한 것이다. 좋은 세상 만들기와 경제적 성공. 과거라면 한 줄에 함께 표현되는 것조차 어색했을 상반된 두 표현을 조합시키면서 그들은 ‘착한 경제’의 코드를 만들고 있었다. 깨끗하게 돈을 벌어 착한 일에 사용하겠다는 이야기다.

지난 10년 동안, 많은 엔지오 활동가들이 정부와 공공부문에서 자원을 구하려 노력했고 성공하기도 했다. 지금 그들은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좌절하고 있다.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엔지오를 돕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이런 우려의 한쪽에서, 시장에서 자원을 구해 선한 일에 투입하겠다는 새로운 코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대표적인 사회적 가치는 늘 시장의 지지를 통해 성공했다. 재벌개혁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 운동은,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주식 투자자들의 욕구를 이해하면서 사회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환경운동은 아토피에 걸린 아이를 가진 소비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성장했다.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선한 지향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단단해져야 한다. 결국 자립하는 자가 승리한다. 시장으로 돌아가자. 그 곳에 길이 있다.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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