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
좀 치사해 보이지만 말꼬리를 잡기로 하자. 이명박 당선인은 한반도 운하에 대해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쟁점화하는 것은 반대”라고 했다.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에 대해서도 “정치 쟁점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평소 그가 말하는 ‘여의도 정치’는 소모적인 정쟁을 의미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경제는 좋은 것, 정치는 나쁜 것’이라는 공식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정치 혐오증이다. 하긴 이명박 당선인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정치는 정말 나쁜 것일까? 아니, 그런지 아닌지 따지기 전에, 그런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정치를 오래 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답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정치 혐오증은 대체로 ‘박통’(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졌다.
그때 그 시절, ‘백성’들이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은 대체로 대통령의 몫이었다. 경제성장, 물가안정, 차관조달 등 큰 정책은 기본이고, 도로 건설, 지붕 개량, 보건소 설립, 마을 소독, 밀가루 배급 등 구체적인 민생 현안도 대통령이 직접 살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직접 살피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비쳤다. 반면, 정치인은 국회에서 싸움질이나 하고, 정권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로 묘사됐다. 정당은 정치 모리배들의 집합소로 여겨졌다. 이런 상징 조작의 배후에는 정보기관의 공작이 있었다.
대통령과 관료들이 행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통치’나 ‘경제’는 좋은 것, 정치인들이 정당과 국회에서 하는 ‘정치’는 나쁜 것이라는, ‘통치자 프레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박통이 사라진 뒤에도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그 틀을 활용했다. 군 출신들로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박통과 맞서 싸운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잘 몰랐던 것일까?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 생각이 바뀐 것일까? 국민들에게 생색을 낼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은 자신들의 이름으로 입안하고 집행했다. 금융실명제, 하나회 청산, 기초생활보장제, 의약분업, 공무원 임금 인상 등이 그렇게 추진됐다. 국회와 정당은 여전히 ‘거수기’에 불과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무소속 의원 영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천년민주당 창당도 그런 생각의 연장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노무현 대통령이 ‘통치자 프레임’에서 벗어나 보려고 몸부림을 좀 쳤다. 당정 분리가 그 흔적이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열린우리당도, 국민들도 깊은 이해와 준비가 부족했다.
‘통치자 프레임’의 폐해는 심각하다. 정책은 여전히 대통령과 관료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국회와 정당은 국민들의 구체적인 삶에서 멀어졌다. 그렇다고 대통령들이 덕을 보는 것도 아니다. ‘통치자 프레임’은 장기집권의 경우에 유효하다. 지금까지 대통령들이 박통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유는 장기집권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 정치의 이런 비극을 대통령 중심제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단견이다.
정치에 대한 인식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국회와 정당을 정책의 중심축으로 밀어넣어야 한다. 그래야 정당이 제자리를 잡고 민주주의가 발전한다. 대통령이 정책을 ‘독식’해선 안 된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정치의 가장 중요한 내용물은 정책이다. 그중에서 경제가 으뜸이다. 경제는 곧 정치다. 가장 중요한 정치인이, 가장 중요한 정치행위를 하면서, 정치를 혐오하는 것은 명백한 자기부정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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