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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나훈아 기자회견 이후 / 홍은택

등록 2008-02-17 20:01

홍은택/NHN 이사
홍은택/NHN 이사
세상읽기
가수 나훈아씨는 지난달 25일 있었던 뇌쇄적인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을 세 묶음으로 지목했다.

첫째, 인격살인자. “그래요. 여러분이 펜으로 나를 죽이는 거다. 근데 옆에서들 이런저런 얘기 할 때 또 멋대로 하다니(중략) 이제 죽은 사람이 눈 뜨고 다니는 내가 이상해졌다.” 소문을 기사로 옮긴 기자를 인격살인자로 규정했다.

둘째, 인격살인의 방조자. “나는 다른 사람이 썼기 때문에 쓴 것뿐이야. 방조자다.”

셋째, 인격살인의 방관자. “나는 한 줄도 안 썼어. 방관자다.”

그러면서 그는 “적어도 말도 안 되는 억측을 써 내려갈 때는 대한민국 언론 중 한 곳이라도 이것은 아니다, 이거 우리 신중해야 한다는 말 한마디라도 나왔어야 한다”고 질타했다. 기자회견장에 모인 600여명의 기자들 모두 빠져나갈 구멍이 없이 인격살인이라는 ‘범죄’ 현장의 관련자가 돼버렸다.

나씨의 시각은 기자회견 이후 황색 저널리즘과 소문을 확산시킨 인터넷, 그리고 소문이 부풀려지기 전에 스스로 해명하지 않은 나훈아씨에게 ‘나훈아 괴담’ 확산의 책임을 돌린 언론보도와 차이가 있다. 달리 말해 나훈아씨는 기자사회의 연대책임론 또는 공범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훈아 괴담’이 사회적 공익성이 없어서 보도 대상으로 여기지 않은 언론까지도 누명을 쓰는 것은 지나친 것 같다. 그리고 ‘나훈아 괴담’보다 사회에 의미 있는 사실을 한 줌이라도 더 밝혀내기 위해 밤낮으로 뛰고 있는 대다수 기자들은 더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자 그리고 언론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회 파수꾼으로서 언론이 갖는 본질적인 가치를 묻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소문이 사회의 의제로 등장하지 않도록, 또는 등장했을 때 걸러줘야 할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그게 부당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책임을 껴안을 때 인터넷 시대에 언론의 사명과 존재이유가 더욱 뚜렷해질 수 있다. 지금은 누구나 글을 생산하고 전파할 수 있는 시대다. 기자보다 더 많은 독자를 가진 블로거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블로거들에게 그런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

나는 기자들이 블로거와 두 가지 면에서 다르다고 본다. 하나는 기자에게는 공적인 정보에 대한 공적인 접근권이 부여돼 있다는 점이다. 기자실이 설치돼 있든 않든 기자들은 국민의 알권리를 대신해서 정부기관이나 기업에 물어볼 권리를 갖고 있다. 다른 하나는, 기사는 한 기자의 작품이 아니라 공동 작업의 결과라는 점이다. 기사가 나올 때까지 언론사 안에서 적게는 한 번, 많게는 네 번의 관문을 거치게 된다. 개별 기사들은 언론사의 집합적 의사결정의 산출물이다. 더구나 언론은 그 판단의 기준으로 공적인 사명을 들고 있다. 취재와 출고의 이런 과정 때문에 기사는 다른 글보다 믿을 수 있고 공적인 가치를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기사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이어야 할 관문이 거꾸로 회사의 이해관계가 아래로 전달되는 통로로 기능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공적 가치에 반하는 경우도 있다. 현실과 기대의 괴리는 나훈아 괴담을 선정적으로 보도한 데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이 현실을 바로잡아줘야 할 주체도 언론이다. 범람하는 미확인 정보를 걸러주는 역할이 더욱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기자회견 후 한 달쯤 지난 지금 괴담이 떠돌지 않는 것을 보면 ‘인격살인’당한 나씨는 스스로 부활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나씨의 ‘사자’ 같은 카리스마와 치밀한 연출력이 없어 지금도 펜대로 두들겨 맞아 내상을 입고 있는 사람이 없는지 언론이 잘 살펴줬으면 한다.

홍은택/NHN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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